<항목 ID="GC04206397" 구분="일반" name="04999" 유형="일반항목" 레벨="6"> <항목명> <대표항목명><지명>일광광산 강제 노무 동원 <한글항목명>일광광산 강제 노무 동원 <한자항목명>日光鑛山强制勞務動員 <영문항목명> <의미역>Forced Mobilization at Ilgwang Mine <중국어항목명> <메타데이터> <이칭별칭 /> <키워드>역사|사건|강제동원|노동력동원|노무동원|스미토모광업주식회사|청년훈련소|적기만 강제 노무 동원 <연계항목 /> <대표분야>역사/근현대 <대표유형>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표준지역>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표준시대>근대/일제 강점기 <분야>역사/근현대 <유형>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 104 <시대>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전성현 <상세정보 유형="성격">노동력 강제 동원 사건 <상세정보 유형="관련인물/단체">일광광산 <상세정보 type="시간" 유형="발생|시작 시기/일시" 내용="스미토모광업 일광 탄광 선광장에서 인력 강제 동원" 비고="">1944년 4월 1일<시간 식별자="부산:일광광산 강제 노무 동원" /> <상세정보 type="공간" 유형="발생|시작 장소" 명칭="일광광산" 내용="" 비고="" id="1"><지명>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 104<공간 연관="직접" 식별자="부산:일광광산" /> <의견> <관련항목 ID="GC04205085">강제 동원<관련항목 ID="GC04206464">적기만 강제 노무 동원 <본문> <소표제>[정의] <문단>일제 강점기에 <지명 검색어="" 검색="">부산의 <지명 검색어="" 검색="">일광광산에서 인력을 강제로 동원한 사건. <소표제>[역사적 배경] <문단>일제 강점기 말에는 강제 동원 중 특히 군수 물자와 관련된 회사에 강제 동원되어 노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지명 검색어="" 검색="">부산 <지명 검색어="" 검색="">적기만의 각종 군수 회사는 물론이고 기존의 방적, 방직 회사를 비롯하여 금속, 화학 공장 등에서도 강제 동원이 이루어졌다. 대부분 군수품 제조 및 운반과 관련된 회사, 공장들이었다. 또한 전쟁 물자와 관련하여 자원 약탈을 목적으로 한 광산 개발에도 인력이 적극적으로 동원되었다. 1930년대에 개발된 <지명 검색어="" 검색="">부산 지역의 광산에서도 일제 강점기 말에 인력 강제 동원이 이루어졌다. <소표제>[경과] <문단> <지명 검색어="원리" 검색="1">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 104번지에는 조선 내 5대 구리광인 <지명 검색어="" 검색="">일광광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명 검색어="" 검색="">일광광산은 <지명 검색어="" 검색="">일본의 대표 기업인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광업주식회사[住友鑛業株式會社]의 <지명 검색어="" 검색="">일광 주재 탄광으로 1930년대에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住友]는 1885년 <지명 검색어="" 검색="">규슈[九州]의 <지명 검색어="" 검색="">장사탄광(庄司炭礦)을 사들이면서 탄광업에 뛰어들어 1924년에는 <지명 검색어="" 검색="">홋카이도[北海島]까지 진출하였다. 이후 <지명 검색어="" 검색="">판탄광(坂炭鑛)의 경영에 참여하며 1925년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판탄광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문단>1927년에는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별자(別子)광산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28년에는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규슈탄광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30년에는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판탄광주식회사와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규슈탄광주식회사를 병합하여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탄광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37년에는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탄광주식회사와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별자광산주식회사를 병합하여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광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해방 이후까지 운영하였다. 이처럼 주로 <지명 검색어="" 검색="">규슈와 <지명 검색어="" 검색="">홋카이도에서 영업 활동을 하던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가 1930년대 말에는 <지명 검색어="" 검색="">조선에 진출하여 탄광을 개발하고 채광 활동을 개시하였다. <소표제>[결과] <문단>일제 강점기 이 광산에서 일을 한 조선인에 따르면 1944년 4월 1일 <지명 검색어="일광면" 검색="1">일광면 소재의 <기관 검색어="" 검색="">스미토모광업주식회사 <지명 검색어="" 검색="">일광 탄광 선광장에 사람들이 모였는데 모두 징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날 이후 쉬는 날도 없이 매일 주간과 야간 2교대로 구리 채광에 동원되어 아주 고되게 일하였다. 더불어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지명 검색어="장안읍" 검색="1">기장면 장안읍의 청년 훈련소로 가서 군사 훈련도 받았다. 이곳에서의 작업 도중에 발가락이 절단되어 현재까지 장애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전한다. <소표제>[의의와 평가] <문단> <지명 검색어="" 검색="">일광광산은 <지명 검색어="부산광역시" 검색="1">부산광역시에 소재한 강제 노무 동원 현장 중 몇 안 되는 곳으로,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삼을 만하다. <참고문헌> <문헌> <저자>전성현, <서명>『경남 지역 국내 노무 동원에 관한 기초 연구』(<출판사항>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7) <삽도 지정="0"><시청각 ID="GC042P04085" 확장자="jpg" 대표="1">광산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