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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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0704
한자 金貴龍
영어음역 Gim Gwiryong
이칭/별칭 백운(百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237번가길 42[수안동 35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출생 시기/일시 1898년 6월 25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 동래 장터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6월 27일 -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75년 11월 26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연표보기 - 동래 장터 3·1 운동
    출생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350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350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 95
    학교|수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40지도보기
    활동지 동래 장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호는 백운(百雲). 아버지는 김재중(金在重)이고, 어머니는 박인애(朴仁愛)이다. 7남 중 넷째 아들이며, 1925년 5월 22일 서계순(徐桂順)과 결혼하여 3남 2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김귀룡(金貴龍)[1898~1975]은 1898년 6월 25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350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의 학생 대표로서 3월 7일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들과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학생 대표에게 독립 선언서를 전해 받으면서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심하였다.

김귀룡고영건(高永建)·엄진영(嚴進永)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던 중에 3월 10일 동래고등보통학교의 선배이자 경성고등공업학교에 다니던 곽상훈(郭尙勳)이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곽상훈은 수학 교사 이환(李環)과 만나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하여 상의하고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만세 시위의 배후에서 참모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김귀룡과 시위를 주도하는 학생들은 협의 끝에, 동래 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를 거사일로 정하였다. 이어서 3월 11일부터 13일에 걸쳐 고영건의 하숙집에서 학교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 선언서와 대형 독립기, 태극기, 고종 황제의 독살을 폭로하는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는 격문도 준비하였다.

3월 13일 오후 2시, 김귀룡은 제2대의 지휘를 맡아 동래읍성 남문으로 모여드는 동료들과 함께 시위 군중에게 인쇄물을 배포하고 독립 만세를 선창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윽고 김귀룡은 출동한 일본군과 기마경찰들에게 체포되었다. 6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월형을 선고 받았으며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였다. 1975년 11월 16일에 77세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2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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