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일본인 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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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0996
한자 釜山日本人慰靈碑
영어의미역 Momorial Stone for the Japanese in Busan
이칭/별칭 일본인총이안지비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정도서관로 108[두구동 1494-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류교열

    [상세정보]

    성격 비|위령비
    재질 석조
    소유자 부산광역시청
    관리자 부산광역시청
    건립 시기/일시 1962년 5월연표보기 - 부산 일본인 위령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91년 10월 - 부산진구 당감4동에서 금정구 두구동으로 이전
    현 소재지 부산 시립 공원 묘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1494-1지도보기
    원소재지 당감동 화장장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4동 642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에 있는 부산광역시가 해방 후 남겨진 일본인 유골 등을 모아 세운 비.

[건립 경위]
1945년 8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광복과 패망이라는 혼란스런 상황 속에 내몰린 부산 거주 일본인들은 친족의 유골을 수습해 돌아갈 여유가 없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후에 일본인에 의해 개별적으로 송환된 유골도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일본인 유골과 위패 등이 주로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화장장 근처나 시내 사원 등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6·25 전쟁을 거치면서 무질서하게 형성된 시가지에 대한 도시 정비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와 함께 부산시는 인도적 차원에서 일본인 유골들을 수습해 위령비를 세웠다.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의 화장장을 부산진구 당감동으로 이전하면서 당시 김현옥 부산시장은 1962년 5월 일제 강점기 일본인 공동묘지에 산재해 있던 유골과 과거장(過去帳) 등을 한곳에 모아 ‘일본인총이안지비(日本人塚移安之碑)’라 새긴 일본인 위령비와 납골당을 세웠다. 이후 도시 재개발 계획으로 부산 일본인 위령비(釜山日本人慰靈碑)도 다시 이전하게 되었는데, 1991년 10월 토지 이전 비용 등을 부산시가 전액 부담하는 형태로 현재의 부산 시립 공원묘지[영락 공원묘원] 내에 부산 일본인 위령비와 1,528위의 위패 봉안실을 마련하였다.

[위치]
부산 일본인 위령비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1494-1번지 부산 시립 공원묘지에 있다.

[형태]
비의 재질은 돌로 만들었으며, 철골 콘크리트로 만든 위패 봉안실이 옆에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 ‘일본인총이안지비(日本人塚移安之碑)’라고 적혀 있다.

[현황]
1969년부터 재한일본부인부용회(在韓日本婦人芙蓉會) 부산본부[부용회] 회원들이 청소와 관리 등을 맡아 왔으나, 이들이 점차 고령화되면서 관리에 어려움을 겪자 현재는 부산광역시가 시설물 관리 차원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부산 일본인 위령비는 한국과 일본의 비극적인 과거사에 대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화해의 상징이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군인·군속을 포함한 일본 민간인의 유골은 물론, 식민지 상황에서 강제 동원되어 탄광 등 노무 현장이나 전쟁터에서 죽어 간 한국인의 유골까지도 모두가 일본이 남긴 문제이다. 특히 그 소재와 실태 조사 및 송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한 배경으로 일본 정부의 비인도성과 역사 인식에 대한 문제, 그리고 한국 정부의 무성의가 종종 지적되고 있다. 한일 양국의 화해를 위해서도 유골 송환과 그 발생 원인,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남은 원인에 대해 양국이 먼저 인식을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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