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왜성 지성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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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1079
한자 加德島倭城支城-
영어의미역 Site of the Branch of Gadeok Island Waeseong Fortress
이칭/별칭 가덕도 왜성 지성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산19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나동욱

    [상세정보]

    성격 성곽 터|왜성 터
    소유자 개인
    관리자 부산광역시 강서구청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1년연표보기 - 부산대학교 한일문화연구소가 자료 조사를 실시함
    소재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산 196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가덕도에 있는 조선 후기 왜성의 지성 터.

[개설]
가덕도 왜성 지성 터는 고려 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갈마봉성의 동쪽과 서남쪽을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개조하여 축조한 왜성이다. 일본군이 가덕도 일대와 안골만 주변의 수로 확보와 조선군의 공격으로부터 대비하기 만든 성으로, 일본 장수 고바야가와 히데카네[小早川秀色], 다치바나 무네도라[立花統虎], 다카하시 무네마스[高橋統增], 쯔쿠시 히로카도[筑紫廣門] 등이 가덕도 눌차동의 본성과 함께 쌓았다. 본성은 거점이 되는 중심 성이고, 지성은 본성을 지원하는 별개의 성을 이른다,

[위치]
가덕도 왜성 지성 터가덕도 최북단 155m의 갈마봉 산상에 위치하며, 강서구 녹산동 부산·진해 경제 자유 구역 맞은편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61년 부산대학교 한일문화연구소가 자료 조사를 실시하여 발간한 『경남의 왜성지』에 따르면 이곳에 가덕도 왜성의 본성이 있어 가덕도의 북쪽 수로를 건너 서북에 안골포성과 대치되고 있으며, 주민에 의하면 성곽 밖으로 토성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방어보다는 오히려 육지에 있는 여러 성곽과 혹은 해로의 함선들과 연락을 취하는 역할을 한 성곽으로 보고 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성의 높이는 3~6m, 석축의 경사는 60~70도이며, 특히 봉수대로 추정되는 곳은 구축이 견고하고 성벽보다 1단 높게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가덕도 왜성의 지성은 평면 타원형의 기존 성곽에 성벽을 연장하여 축조한 부정형의 성이다. 갈마봉으로 오르는 동쪽 능선과 북서쪽 해발 130m 지점의 비교적 평탄한 지점에서 왜성의 흔적이 확인된다. 동쪽에서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2~3단의 경사면이 보이며, 산성의 동쪽 추정 문지 아래에서 L자 형의 토루와 성벽 돌도 확인된다. 북서쪽의 경우 추정 동문지 서북쪽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석축이 있으며, 구간에 따라 토축 성벽도 확인된다. 석축 성벽과 토축 성벽은 지형에 맞추어 꺾여 치성(雉城)[성벽을 돌출시켜 성벽에 붙은 적을 측면에서 제어하는 시설]과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 내부는 비교적 평탄한데, 동북쪽은 자연 경사면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이전에 축조된 산성의 서벽과 연결된다.

[현황]
현재 서남쪽 성내는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간이 체육 시설이 들어서 있다. 곳곳에 잡초가 우거져 있어 서쪽 일부 성벽을 제외하고는 무너져 내린 석재들을 통하여 성벽의 선 정도만 확인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남해안 수로 확보를 위한 인근 가덕도 왜성의 보조성으로 본성인 가덕도 왜성과 함께 남해안 지역 왜성의 축조 수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우리나라의 성을 이용하여 축성한 사례로서 한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가덕도에 머문 적이 있어 조선 수군의 제해권 장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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