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동 산성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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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1111
한자 水晶洞山城-
영어음역 Sujeongdongsanseong-teo
이칭/별칭 수정동 목장성,수정동 산성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3동 산17-4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나동욱

    [상세정보]

    성격 목장성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3동 산 17-4
[정의]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3동에 있는 오해야항 목장의 외성인 수정동 산성의 터.

[개설]
수정동 산성은 1418년(태종 18)에 축조되었는데, 길이 약 1.7㎞가 남아 있다. 1663년(현종 4) 정색이 그린 「목장 지도(牧場地圖)」에는 “동래부에 5개의 목장이 있으며 목장 내 1처에는 설장(設場)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목장 지도」에는 절영도 목장, 석포 목장, 오해야항 목장이 보이며, 오해야항 목장이 외성, 중성, 내성 등 3개 목장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오해야항 목장의 규모와 관련하여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둘레가 74리 30보이고, 안에 축장(築墻)한 곳이 12리 90보”라고 기록되어 있고,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는 “둘레 186리”, 「목장 지도」에는 “둘레 60리”, 『동래군지(東萊郡誌)』에는 “엄광산에서 부산 범내골까지 길이 25리, 고다대포에서 석성산까지 길이 10리”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해야항의 어원은 말 먹이는 외양간에서 나온 말로, 목장 지대란 뜻으로 보고 있다. 오해야항 목장에서 방목되는 마필(馬匹)의 수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말 480필,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말 793필이 방목되고 있다고 기록하여 절영도 목장의 소 276두, 석포 목장의 말 232필보다 월등히 많이 방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기록은 비교할 자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위치]
수정동 산성 터부산광역시 동구 수정3동 동여중학교 뒤쪽의 능선에서부터 부산진구 가야동, 주례동 냉정산 위쪽의 개금동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뒷산까지 걸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오해야항 목장의 성벽은 대체로 200~270m 사이에 걸쳐서 축조되었는데, 현재 성벽이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는 구간은 부산동여자고등학교 서남쪽의 급경사지와 공동묘지 조성 지역에서 동의대학교 야구장의 남쪽 경사면과 서쪽 경사면, 가야동 벽산아파트 뒷산부터 개금동 백병원 뒷산 지역까지이다. 그러나 경사가 완만한 지역의 성벽은 대부분 그 흔적 정도만 남아 있다. 수정산[315m] 남쪽 계곡의 서쪽 경사면의 경우 가로 50~90㎝, 세로 30~40㎝, 높이 40~60㎝ 크기의 크고 긴 석재를 이용하여 기단석 없이 축조하였는데, 높은 곳은 1.5m 정도 남아 있다. 성벽의 너비는 대체로 4~8m로 수정산의 서남쪽 250m의 정상부로 가면서 좁아져 3m 정도이다. 비교적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3m 정도 길이마다 석축이 단을 이루고 있어 일정한 간격으로 축대를 쌓으면서 성벽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수정동 산성은 조선 전기 부산 지역 최대 규모의 목장인 오해야항 목장의 외성으로, 사하구 당리동괴정동에서 확인되는 오해야항 목장의 중성과 함께 당시 동래부의 남쪽 부산 지역 전체가 목마장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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