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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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1208
한자 李夏榮
영어음역 Yi Hayeong
이칭/별칭 치행(致行),금산(琹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성격 관료
    성별
    본관 경주
    대표관직 법부대신
    출생 시기/일시 1858년 8월 10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86년 7월 29일 - 외아문 주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87년 6월 29일 - 사헌부 감찰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87년 8월 5일 - 전환국 위원 겸 주차 미국 공사관 서기관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88년 10월 8일 - 주차 미국 서리 전권대신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90년 7월 7일 - 기무국 사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90년 12월 4일 - 웅천 현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94년 - 외아문 참의, 승정원 우부승선 겸임 상의원 제조 역임
    활동 시기/일시 1895년 - 영선사장, 궁내부 회계원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896년 - 한성부 관찰사, 주차 일본 주재 전권 공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897년 - 일본국 훈1등 욱일 대수장 받음, 중추원 부의장, 중추원 의장, 귀족원 경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03년 - 궁내부 특진관, 외부대신 서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04년 - 외부대신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5년 - 1등 팔괘장 서훈, 법부대신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형법 교정총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7년 5월 - 중추원 고문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10년 - 작위를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10년 - 조선 총독부 중추원 고문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929년 3월 1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29년 - 욱일 동화대수장 추서
    출생지 기장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성 서부 합동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묘소|단소 이하영 묘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
[정의]
개항기 기장 출신의 친일파 관료.

[개설]
1904년(고종 41) 외부대신으로 일본에 많은 이권을 넘겼으며, 국권 피탈 후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칭호를 받고 조선 총독부 중추원 고문을 지낸 친일파 관료이다.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치행(致行), 호는 금산(琹山). 아들은 이규원이다.

[활동 사항]
이하영(李夏榮)[1858~1929]은 1858년 8월 10일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양산 통도사에 있다가 부산의 일본인 상점에서 사환으로 일하면서 일본어를 배웠다. 그 후 서울로 옮겨 경성 서부 합동 61통 6호에 거주하였다. 1885년(고종 22) 제중원 서기일 때 미국인 선교사 알렌[Horace Newton Allen]으로부터 영어를 배워 통역사로 궁에 출입하였다. 미국인의 추천으로 1886년(고종 23) 7월 29일 외아문 주사(外衙門主事)가 되었다. 그 후 출세 가도를 달려 1887년(고종 24) 8월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과 주차 미국 공사관 서기관이 되어 9월에 공사 박정양(朴定陽)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1888년(고종 25) 10월 미국에 머물 때 주차 미국 서리 전권대신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귀국하면서 조선의 철도 건설에 관심이 있던 미국 정부로부터 철도 모형을 얻어 왔다. 1890년(고종 27) 7월 기기국 사사(機器局司事)를 거쳐 같은 해 12월 웅천 현감으로 옮겼다. 1892년(고종 29) 1월에는 흥덕 현감이 되었다. 1894년(고종 31) 9월 외아문 참의, 10월 승정원 우부승선 겸임 상의원 제조, 1895년(고종 32) 4월 궁내부 영선사장(宮內府營繕司長), 같은 달 궁내부 회계원장이 되었다.

1896년(고종 33) 2월 한성부 관찰사에 이어 4월에 주차 일본국 특명 전권 공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1897년(고종 34) 일본국 훈1등 욱일 대수장을 받고 귀국하여 중추원 부의장, 중추원 의장, 귀족원 경 등을 역임하였다. 1899년 의정부 찬정, 주차 일본국 특명 전권 공사 등을 지냈다.

1903년(고종 40) 궁내부 특진관, 외부대신 서리, 1904년(고종 41) 통신원 총판, 의정부 찬정, 외부대신이 되었다. 외부대신 재임 중 일본에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의 어로권 부여,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제1차 한일 협약 후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 재정 고문 취임, 일본 헌병대의 경성 치안권 장악, 통신원 이양 및 연해 하천의 항해 무역권 부여 등 굵직한 사건 들이 일어났다. 이하영은 이와 관련된 이권을 모두 일본에 넘겼다.

1905년(고종 42) 9월 법부대신, 1906년(고종 43) 12월 형법 교정총재(刑法校正總裁), 1907년(순종 즉위년) 5월 중추원 고문이 되었다. 1910년 국권 피탈 후 조선 귀족령에 따라 자작 작위를 받았고, 조선 총독부 중추원 고문을 지냈다. 1915년 11월 대정(大正) 천황 즉위 대례식에 귀족 총대로 참석하여 부인 최씨와 함께 즉위 기념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1916년 조선 총독부 중추원 고문으로 『조선 반도사』 편찬 심사 위원과 『조선 인명 휘고』 편찬 심사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17년 10월에는 불교옹호회 평의원에 선출되었고, 1919년 6월 조선농사개량주식회사 발기인으로 참석하였으며 1920년에는 유불선의 교지를 취합한 삼성무극교의 창립 발기인이 되었다. 1922년 9월에는 취체역(取締役)[이사]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25년 4월 사단법인 조선귀족회 이사, 1926년 3월 교육 칙어 준수와 교육 협성을 목적으로 조직된 교육협성회 고문이 되었다. 1927년 내선 귀족을 중심으로 구성된 조선토지흥업주식회사 창립 위원장을 맡았다. 1929년 3월 1일 중추원 고문으로 재임 중 세상을 떠났다.

[묘소]
이하영의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 동막골 장상 저수지 위쪽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29년 욱일 동화대수장(旭日桐花大綬章)이 추서되었다. 이하영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및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195인’ 명단에 끼었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 인명사전』에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아들 이규원과 함께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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