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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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1390
한자 具壽巖
영어음역 Gu Suam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269-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출생 시기/일시 1901년 2월 1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5일 - 기장면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1일 -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
    활동 시기/일시 1919년 6월 11일 -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20년 5월 1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6년 - 구수암 장례식 재현 행사 개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4월 5일연표보기 - 기장면 3·1 운동
    출생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269-1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269-1
    활동지 부산광역시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구수암(具壽巖)[1901~1920]은 1901년 2월 1일에 동래군 기장면 동부리 267번지[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269-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기장면에서 일어난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3·1 운동 소식과 동래 장터의 3·1 운동 소식이 기장에 전해질 무렵 서울의 모 신문사에 다니던 김수룡(金壽龍)이 김도엽(金度燁)·권철암(權鐵巖)·구수암(具壽巖)·최기복(催基福)·이택규(李澤奎)·박공표(朴孔杓)·오기원(吳基元) 등 기장 지역 청년들에게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에 이들은 4월 5일 기장 장날 오전 11시로 거사 일정을 정하고, 기장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최창용(崔昌鎔)을 통해 기장면사무소의 등사판과 등사 원지를 빌려 옛 기장 장관청(將官廳) 등에서 독립 선언서를 등사하였다.

거사일인 4월 5일이 되어 주동자들은 ‘양심발원(良心發源) 인도적 자유 민족’과 ‘조선 독립 만세, 조선독립단’이라고 대서특필한 큰 깃발을 들고 기장 장터에 도착해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며 기장면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구수암은 시위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6월 11일 징역 1년 6월형이 선고되어 대구감옥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구수암은 수감 중 고문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병보석으로 가출옥하였다. 그러나 가출옥 15일 만인 1920년 5월 1일에 2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당시 집에는 노모와 어린 여동생이 있었고 가계가 힘들어 초상을 치를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명정의숙 여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성금을 거두어 장례를 치렀다. 장례는 면민장으로 진행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2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996년 차성 문화제 행사 때 구수암 장례식 재현 행사가 거행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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