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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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1395
한자 朴泰善
영어음역 Bak Taeseon
이칭/별칭 감람나무,동방의 의인,이긴자
분야 종교/신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77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정원

    [상세정보]

    성격 종교인
    성별
    대표경력 천부교 창시자
    출생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54년 - 창동교회에서 장로에 임직
    활동 시기/일시 1955년 - 무학교회를 시작으로 서울 남산, 부산, 한강 백사장 집회를 인도하면서 부흥사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55년 - 한국예수교부흥협회를 창립
    활동 시기/일시 1956년 1월 - 한국예수교부흥협회를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로 개칭
    활동 시기/일시 1957년 -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60년 7월 - 한국예수교전도관유지재단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60년 8월 15일 -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의 헌정을 제정하여 회장으로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62년 7월 - 경기도 남양주에 덕소신앙촌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71년 8월 - 기장신앙촌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80년 8월 - 교명을 천부교로 개명
    몰년 시기/일시 1990년 2월 8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평안남도 덕천군 덕천읍 읍남리 148
    활동지 소사신앙촌 -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범박동
    활동지 덕소신앙촌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활동지 기장신앙촌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770지도보기
    묘소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770
[정의]
1971년 부산 지역에 기장신앙촌을 건립한 천부교 창시자.

[개설]
아버지는 박영진(朴永鎭)이고, 어머니는 김천태(金天泰)이다.

[활동 사항]
1. 부흥사로 활동

박태선(朴泰善)[1917~1990]은 1917년 평안남도 덕천군 덕천읍 읍남리 148번지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덕천군 교회 주일 학교를 다니다가 소학교를 마친 뒤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고등공업학교를 마치고 정밀 기계 공장을 경영하였다. 8·15 광복 후 귀국하여 대한정밀공업사라는 기계 부속품 공장을 운영하면서, 서울 남대문장로교회에서 김치선(金致善) 목사의 주선으로 집사로 활동하였다. 이때 성결교회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의 부흥회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의 역사를 체험하였다고 한다. 이후 감리교회 부흥사 나운몽(羅雲夢) 장로와 대구·부산·서울·대전 순으로 순회 집회를 가지기도 하였다.

1954년에는 창동교회에서 장로에 임직되었고, 1955년 1월 무학교회를 시작으로 서울 남산, 부산, 한강 백사장 집회를 인도하면서 부흥사로 활동하였다. 특히 남산 집회에서 기성 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한국예수교부흥협회를 창립하였다. 이에 한국기독교연합회에서 박태선이 이끄는 집단을 사이비 종교로 규정하였고, 창동교회에서 제명 처분되었다. 1956년 1월 한국예수교부흥협회를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로 개칭하였고, 부흥 집회와 전도관이 전국 각지에서 개관되었다. 같은 해 11월 11일 박태선을 감람나무로 추대하는 행사가 거행되었다.

2. 소사신앙촌, 덕소신앙촌 건립

1957년 경기도 부천의 약 49만 5000㎡[15만 평] 부지에 소사신앙촌이 건립되었다. 1958년 11월 공갈 사기 혐의로 입건, 구속되어 1960년 3월에 석방되었다. 1960년 7월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의 재산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예수교전도관유지재단 설립을 허가받았고, 1960년 8월 15일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의 헌정을 제정하여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같은 해 12월 『동아 일보』가 박태선의 성화 사진은 가짜이며, 조작되었다고 보도한 데 대해 동아일보사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961년에는 불법 선거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가 1962년 석방되었다. 1962년 7월 경기도 남양주에 중공업에 중점을 둔 덕소신앙촌을 건립하였다.

3. 기장신앙촌 건립

또 1970년 4월부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해변에 제3신앙촌 건립을 추진하여 1971년 8월에 완공하였다. 신앙촌은 천부교인들의 성지이며, 생활 터전으로, 현재 신앙촌은 기장신앙촌을 일컫는다. 기장신앙촌은 천부교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장소로 한일물산·시온합섬·시온식품·오리엔스금속·한일영농조합법인 등의 계열사에서 의류·침구·양말·식품 등의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교육 시설도 갖추고 있다.

1980년 4월 탈기독교를 선언하면서 기독교를 전면 부정하였고, 8월에는 교명을 천부교(天父敎)로 개명하였다. 11월에는 재단법인 한국예수교전도관유지재단을 한국천부교전도관유지재단으로 개칭하였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지칭하며, 신도들에게 이혼과 별거를 명령하였으며, 섹스 안찰(按擦) 시비가 일기도 하였다. 그러나 박태선은 지병이었던 당뇨 합병증으로 1990년 2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박태선의 사망은 영생과 구원을 믿어온 많은 천부교인들의 이탈을 가져왔으며, 현재는 삼남인 박윤명이 신앙촌과 시온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묘소]
묘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770번지에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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