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산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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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1742
한자 龍頭山神社
영어의미역 Yongdu Mountain Shrine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길 35-18[광복동 2가 1-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승

    [상세정보]

    성격 종교 기관|신사
    개칭 시기/일시 1899년 7월연표보기 - 거류지 신사에서 용두산 신사로 개칭
    이전 시기/일시 1916년 - 용두산 최정상부로 이전
    해체 시기/일시 1945년 11월 17일연표보기 - 화재로 소실
    주소 변경 이력 용두산 공원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2가 1-2지도보기
[정의]
개항기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에 있었던 신사.

[개설]
용두산 신사(龍頭山神社)는 개항 이후 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정신적 안식처였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군국주의를 전파하는 침략 이데올로기의 발신지였다는 점에서 식민지 시대를 이해하는 역사 교육의 살아 있는 현장이다.

[변천]
신사(神社)는 일본의 신토 신앙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신을 모시는 제사 시설로서, 조선 시대 초량 왜관(草梁倭館) 시절부터 일본인들은 용두산에 여러 신사를 건립하였다. 개항 이후 이들 신사는 부산 거주 일본인들에 의해 1898년(고종 35) 9월 개건(改建) 작업이 이루어져 1899년(고종 36) 2월부터 ‘거류지 신사’로 불렸다가, 그해 7월 ‘용두산 신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원래 용두산 신사는 현재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곳 주변에 위치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1916년 용두산 공원을 대대적으로 조성하면서 용두산 신사는 현재 부산 타워가 위치한 용두산의 최정상부로 옮겨지게 되었다. 용두산 신사 아래에는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어 신사 관련 일반의 행사뿐만 아니라, 부산부(釜山府)에서 주관한 각종 집회 및 사회단체의 모임이 열렸었다. 이후 용두산 신사는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부산 거주 일본인들의 중요 의례와 신사 참배의 중요 대상지로서 그 기능을 담당하였는데, 해방 이후 1945년 11월 17일 화재로 그 흔적이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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