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리아 부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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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2980
한자 -部隊-
영어의미역 U.S. Military Installation|Camp Hialeah in Busan
이칭/별칭 하야리아 부대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연지동|범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유식

    [상세정보]

    성격 군부대 터
    지정면적 548,000㎡
    소유자 부산광역시청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0년 10월 6일~11월연표보기 - (재)동양문물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6년 8월 - 부지가 부산에 반환됨
    소재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연지동
    소재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전동
[정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연지동범전동에 있는 6·25 전쟁 때 미군 하야리아 부대가 주둔했던 곳.

[변천]
‘하야리아’라는 부대 명칭은 1950년 9월 주한 미군 부산기지사령부가 이곳에 설치되었을 때, 그들이 주둔하는 기지에 애칭을 붙이는 관례에 따라 초대 사령관의 고향인 미국 플로리다 주의 ‘베이스 하야리아’라는 지명을 따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야리아’는 북미 원주민어로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일제가 1927년에 부산 경마 구락부를 설립하고, 1930년에 서면 경마장을 개장하여 경마를 즐기던 곳이었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후에는 경마장을 확장해 병참 기지로 바꾸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동남아 지역 전장으로 젊은이들을 징용 보내기 위한 임시 훈련소로 사용되었으며, 전쟁 물자의 야적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45년 9월 부산에 진주한 미군 첫 부대가 이곳에 주둔하였으며, 1948년 정부 수립 후 미국 영사관과 유엔 산하 기구 등이 사용하다가, 1950년 농지 개혁 때 농민들에게 불하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발발 직후 주한 미군 부산기지사령부가 들어서, 주한 미군의 물자 및 무기 보급 관리 등의 전투 지원 역할을 수행한 이래 미군이 관리하게 되었다. 6·25 전쟁 이후 한국에 주둔한 5만여 명의 미군이 사용할 군수 물자 보급 창고와 부산권 미군 부대원들의 숙소가 건립되어 사용되었다.

한편 미군이 점령한 하야리아 부대 터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반환 운동도 줄기차게 전개되었다. 하야리아 부대 주변의 주민들은 미군 부대로 인해 반세기 이상 생활의 고통을 감수하였고, 부산 시민들은 때론 옥고를 치러야 하는 고난도 감수하였다. 1995년 민주주의민족통일 부산연합은 ‘하야리아 땅 되찾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이어 ‘우리 땅 하야리아 등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가 정식으로 결성되어 범시민 서명 운동과 설문 조사를 실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시민 운동은 이후 2003년 7월 하야리아 부대 앞에서 전개된 ‘아시아의 평화와 미군기지 완전 반환을 위한 한일 공동 행동’과 2005년 3월 부산 지역 80여 개 시민 사회 단체로 구성된 ‘하야리아 부지 시민공원추진 범시민운동본부’ 구성으로 이어졌다.

부산광역시는 하야리아 부대에 시민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여 2002년 3월 군부대 이전 적지 활용 방안 기본 방침을 확정하였다. 2003년 ‘한미 간 연합 토지 관리 계획 협정’에 따라 2011년까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으로 이전될 예정이었으나, 2004년 10월 이 협정이 개정되면서 이전 계획이 백지화되고 반환 시기가 앞당겨져 2006년 8월 부산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2011년 현재 부산 시민 공원이라는 명칭이 확정되고, 2015년까지 부산을 대표하는 센트럴 파크로서 세계적인 도시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하야리아 부대 터부산 시민 공원을 조성하기에 앞서 2010년 10월 6일부터 11월까지 (재)동양문물연구원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하야리아 부대 터 54만여㎡ 중 20만 5000㎡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결과,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문화재가 대거 출토되었다. 하야리아 부대 내 동쪽 구릉지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민무늬 토기편이 나왔고, 5세기 삼국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뚜껑 없는 굽다리 접시와 목 짧은 항아리를 비롯하여, 분청사기편과 옹기·토기편들도 다량 출토되었다. 더불어 삼국 시대의 무덤 양식인 움무덤도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조선 시대의 백자편과 경마장과 관련된 유물도 출토되었다.

[현황]
2011년 3월 11일 부산광역시는 명칭선정위원회를 열고 하야리아 부대 터에 조성되는 공원의 명칭을 부산 시민 공원으로 최종 확정하였다. 2011년 8월 11일 부산 시민 공원 기공식을 개최하고 공원 조성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부산광역시는 총 사업비 6,494억 원을 투입하여 2014년까지 세계 수준의 명품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공원의 규모는 52만 8278㎡로, ‘기억, 문화, 즐거움, 자연, 참여’라는 5가지 주제의 숲길로 꾸며진다.

기억의 숲에는 일제 강점기와 미군 주둔 시기의 역사 자료를 활용해 역사 문화관, 랜드마크 폭포, 기억의 벽, 역사의 길 등을 조성한다. 문화의 숲에는 공원 중앙을 가로지르는 숲 주변으로 다목적 잔디 광장, 미디어 테크[첨단 도서관], 문화예술원, 국립극장 등을 배치할 예정이다. 즐거움의 숲에는 어린이 놀이 마당, 운동 마당 등 다양한 테마 놀이 공간을 조성한다. 자연의 숲은 자연 체험장, 야생화초 숲, 생태 호수, 음악 분수, 도심 백사장 등으로, 참여의 숲은 열린 참여의 벽, 참여 정원, 모임·축제 광장 등으로 각각 꾸며진다.

그러나 부산 시민 공원 조성 사업은 앞으로 여러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특히 부대 내의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야리아 부대 환경오염 문제는 1999년 9월 하야리아 부대 기름 유출 사건과 2000년 5월에 석면 오염 확인으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2010년 토양 오염 조사에서 하야리아 부지 53만여㎡ 중 7만 3000여㎡에서 토양 오염이 확인되었고, 기름 오염이 6만 5000㎡, 중금속 오염은 8,907㎡로 나타난 바 있다. 2011년 6월 ‘하야리아 공원조성 범시민운동본부’가 고엽제와 유해 화학 물질에 대한 정밀 조사를 촉구하는 등 환경오염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2011년 9월 현재 환경오염 정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의의와 평가]
1930년대 일제가 경마장으로 사용한 이래 부산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이곳은 한 세기에 가까운 오랜 세월 동안 시민들이 마음 놓고 드나들지 못하였던 ‘부산 속의 남의 땅’으로 존재해 왔다. 하야리아 부대 터는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의 부대 이름과는 달리 침략과 지배, 전쟁과 피난, 그리고 분단으로 이어진 한국과 부산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인 현장이다. 하야리아 부대 터가 반환되어 부산 시민 공원이 조성되고 있는 오늘의 역사는 이 터의 반환을 위해 온몸을 던졌던 부산 시민들의 저항과 반환 운동의 오랜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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