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회 부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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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2994
한자 芙蓉會釜山本部
영어음역 Robert A. Hardie
이칭/별칭 부용회 부산본부,재한일본인부인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류교열

    [상세정보]

    성격 사회단체
    설립자 구니다 후사코[国田房子]
    전화 051-555-2770
    설립 시기/일시 1945년 이후연표보기 - 야요이회로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65년연표보기 - 야요이회에서 재한일본인부인회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66년연표보기 - 재한일본인부인회에서 부용회 부산본부로 개칭
    최초 설립지 부산광역시
    현 소재지 두실 전철역 부근 -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있었던 일본인 여성 단체.

[개설]
해방 전 한국인과 결혼해 국내에 머문 일본인 여성을 ‘재한 일본인 처’라고 하는데, ‘부용회 부산본부’는 바로 이들의 부산 지역 조직이다. 1942년 일본 외무성 조사에 따르면 조선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으로 구성된 부부가 일본에 1,284쌍, 조선에 106쌍이 각각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에 있던 약 1,300쌍의 부부 중에서도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이 격화되자 가까운 조선으로 피난하려는 이들이 급증하였다. 그리고 1945년 말 한반도 내의 일본인 2만 7935명 중 1,307명이 잔류를 희망하였다는 기사가 있는데, 이들 중에는 재한 일본인 처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해방 후 부산에 잔류한 재한 일본인 처들로 구성된 단체의 기원은 ‘야요이회[弥生会]’라 할 수 있는데, 약 20여 명이 여기에 참여하였다. 야요이회는 1965년 ‘재한일본인부인회(在韓日本人婦人會)’가 전국적으로 결성됨에 따라 명칭이 바뀌었으며, 같은 해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한국으로 건너온 일본 부인들도 다수 재한일본인부인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6년 다시 ‘부용회(芙蓉會)’로 개칭되었다. 현재 부용회는 부산과 서울 본부를 비롯한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광주, 목포, 여수, 대구, 포항, 마산 등 9개 지부 약 55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생존해 있는 고령화한 회원들의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부용회 부산본부의 회원 수는 2005년 『국제 신문』에서 약 90여 명으로 보도한 바 있다.

[설립 목적]
부용회 부산본부는 해방 후 부산에 잔류한 일본인 부인들의 상호 부조와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용회 부산본부 회원들은 매년 추분이면 부산 시립 공원묘지 내에 있는 일본인 위령비를 찾아 추모제를 지내고 있으며, 회원들 간의 친목을 위한 모임을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다.

[현황]
부용회 부산본부의 회장은 구니다 후사코[国田房子], 부회장은 엔도 노부[遠藤ノブ]이다. 현재 부용회의 회원들은 극소수가 생존해 있으며 모두 고령이다. 이들은 거동이 불편하게 되면 마지막으로 일본인 부인 양로원인 경주의 나자레원으로 가서 말년을 보낸다.

[의의와 평가]
부용회의 회원들은 일제의 패망 후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은 물론, 일본의 친족들과도 소원해져 연락마저 안 되는 상태에 놓이면서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양쪽의 무관심 속에서 차별받아 왔다. 일본 정부는 군인·군속의 희생에 대해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막대한 공적 자금을 들여 현창하고 있으나, 일반 민간인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피식민지 국민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부용회는 일본 정부가 어떤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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