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의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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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3071
한자 高麗時代-文化遺産
영어의미역 Cultural Assets of the Goryeo Dynast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최영호
[정의]
부산 지역에 현존하는 고려 시대의 유물 및 유적.

[개설]
부산 지역은 고려 시대와는 거리가 있는 곳이다. 그 이유는 첫째 고려의 수도는 신라와 달리 부산과 멀리 떨어진 개성이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부각이 되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점이 인근의 김해나 울산 지역에 유력한 호족의 출현이 있게 하였지만, 부산에는 그러한 정황도 잘 찾아볼 수 없다. 둘째 고려 건국에 일정한 구실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산은 고려 초에 속현으로 강등되었다가 인종 대[재위 1122~1146] 무렵에 가서야 주현으로 승격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고려 시대의 문화유산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2013년 현재 부산 지역의 고려 시대 문화유산은 국가가 지정한 보물 3점, 부산광역시가 지정한 유형 문화재 13점, 기념물 3건, 문화재 자료 2점이 있다. 이를 구분하면 크게 행정 문화재, 불교 문화재, 국방 문화재로 나누어진다.

[행정 문화재]
행정 문화재는 행정 업무를 보는 것을 주로 하는 문화재로 읍성을 가리킨다. 부산의 고려 시대 읍성은 동래 고읍성, 동래 읍성, 동평 읍성, 기장 고읍성을 들 수 있다. 동래 고읍성이 있던 지역은 현재 수영구 망미동 포스코 아파트 단지로 당시 지명은 해운포이다. 이곳은 통일 신라 시대 경덕왕 때 종전의 거칠산군을 동래군으로 개명하면서 축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나말 여초 정치적 소용돌이에 읍성의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였고, 고려 중기 주현으로 승격되면서 행정적·군사적 중심 읍성의 기능을 갖추었다. 이러한 해운포의 고려 고읍성이 1387년(우왕 13) 지금의 조선 시대 동래 읍성으로 이거하였다. 이거한 이유는 당시 급격히 창궐한 왜구에 의하여 동래 고읍성이 황폐화되고 본격적으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둘레 약 936.36m[3,090척], 높이 약 3.94m[13척]에 6개 우물을 지었다고 한다.

조선 초의 기록을 토대로 이 시기 읍성 규모를 추측해 보면 지금의 부산 복천동 고분군을 중심으로 서장대나 동장대 쪽으로 이어진 형태를 알 수 있다. 동평 읍성은 현재 부산진구 당감동 지역이다. 동평현동래현의 속현이었기 때문에 주현인 동래현보다 격이 낮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도 현성의 크기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둘레가 약 1,063.03m[3,508척]라고 되어 있다. 발굴에 의하면 동평현 성터는 3차에 걸친 판축법으로 성벽을 축조 또는 보수하였고, 출토 유물은 기와·청자·분청사기·백자 조각이 나왔다. 이로 미루어 동평현 성은 신라 말에서 조선 초까지 있었던 성곽으로 나타났다.

기장 고읍성은 조선 세종 때 축조한 기장 읍성에 대한 것으로, 고려 시대와 조선 초의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토성이었다. 크기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약 972.12m[3.208척]로 되어 있다. 성벽은 현재 기장군 옛 임시 청사 뒤 새트산의 동쪽 구릉 정상부를 따라 계곡을 건너 향교의 북서쪽 능선에서 교리 뒷산을 거쳐 향교의 동쪽으로 내려오는 평면 타원형으로 남아 있다. 즉 평산성의 형태를 띠고 있다.

[불교 문화재]
불교 문화재로는 대표적으로 만덕사지(萬德寺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를 들 수 있다. 이곳의 유적으로는 만덕사지 당간 지주(萬德寺址幢竿支柱)[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4호, 북구 만덕동 84번지 일원]가 있다. 만덕사에 대한 정확한 창건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충혜왕의 서자 석기가 유배 온 절로 알려져 있다. 다만 출토 유물에서 만덕사라는 명문을 찾을 수 없고, 기비사라는 절터를 알 수 있는 기와가 출토되었다.

그러나 왕자가 유배 올 정도의 사격(寺格)을 볼 수 있는 유물은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암수 막새·치미·평기와·전(塼) 등인데, 그중에서 가장 눈여겨 볼 것이 신라 황룡사와 같은 웅장한 치미이다. 그리고 이곳에 지름 90㎝, 두께 30㎝가량의 화강암 석재로 만들어진 석조 불상 대좌(石造佛像臺座)가 있는데, 상당히 크고 화려한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와 비슷한 유물로 범어사 석조 연화 대좌 하대석(梵魚寺石造蓮花臺座下臺石)[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73호, 신라 말~고려 초]도 당시 부산 지역 사회의 불교문화에 대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그리고 석탑은 오층 석탑(五層石塔)[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9호, 신라 말~고려 초, 부산대학교 박물관 소장,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삼정면 대곡사 터에서 이전], 삼층 석탑(三層石塔)[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0호 고려 말~조선 초,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재,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상천리의 폐사지에서 이전 복원]이 있다.

또한 원효암 동편 삼층 석탑(元曉庵東便三層石塔)[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1호 신라 말~고려 초, 범어사 원효암 소재], 원효암 서편 삼층 석탑(元曉庵西便三層石塔)[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2호, 신라 말~고려 초], 고려 오층 석탑(高麗五層石塔)[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3호, 고려 시대 동래구 온천동 301-15번지 소재], 범방동 삼층 석탑(凡方洞三層石塔)[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23호, 강서구 미음동 1520-325번지 일원], 선암사 삼층 석탑(仙巖寺三層石塔)[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53호], 고불사 삼층 석탑(古佛寺三層石塔)[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57호, 고려 초] 등이 남아 있다.

이렇듯 부산에 격을 갖춘 석탑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통일 신라 말 불교가 경주를 벗어나 지방으로 전파된 사실과 불교를 배경으로 하는 세력가의 성장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불교 경전은 『주범망경(注梵網經)』[보물 제894-2호, 고려 후기, 범어사 소장], 『불조 삼경(佛祖三經)』[보물 제1224-2호, 고려 말, 범어사 소장], 『금장요집경(金藏要集經)』 권1~2[보물 제1525호, 고려 말~조선 전기, 범어사 소장], 『보리달마 사행론(菩堤達摩四行論)』[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81호, 14세기 중엽, 범어사 소장], 『선문 염송집(禪門拈頌集)』[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82호, 14세기 중엽, 범어사 소장], 사경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권제41[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83호, 14세기,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사원에서 불교 의례 때 사용된 대안 원년명 반자(大安元年銘半子)[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00호, 1085,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이나 불교 의례를 위해 물을 담았던 흑유호(黑釉壺) 및 흑유 정병(黑釉淨甁)[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01호, 12세기,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도 불교 문화유산으로 주목된다. 이 외 남구 용당동 절터[부산 문화 회관 뒤 코오롱아파트]에서는 월천사(月天寺) 등의 명문이 새겨진 기와 조각과 청자와 분청사기, 점토로 조성한 연황색의 소조 불두 조각 1점이 출토되어 부산 지역의 불교문화를 재구성할 수 있는 원천 문화유산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국방 문화재]
국방과 관련한 유적으로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과 관련된 봉수대를 들 수 있다. 봉수는 일찍이 삼국 시대부터 이용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본격적으로 법제화된 때는 고려 시대였다. 서긍의 『고려 도경(高麗圖經)』에 보면 “송나라 사신이 흑산도에 들어서면 매번 야간에는 인근 지역의 산꼭대기 봉수에 순차적으로 불을 밝혀 왕경인 개성까지 인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의 기록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고려 시대 봉수대의 연락망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시대 동래의 간비오산 봉수대기장 남산 봉수대[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호]가 간봉 1로에 속하였다. 이 가운데 기장 남산 봉수대는 최근 발굴에서 고려 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봉돈은 동쪽의 것은 원형으로 동서 직경 약 7m, 남북 직경 약 5m 규모이다. 봉돈 상면에는 연소부로 보이는 약 4×5m 규모의 장방형의 석실이 확인된다. 석실은 횡혈식 석실의 연도처럼 입구 중앙이 남쪽으로 트여 화구로 추정되며, 규모는 폭 1.5m 정도이고 안쪽에는 냇돌로 채워져 있다. 봉돈의 기저부는 남서쪽 일부와 서북쪽에서도 확인이 된다.

[기타]
그 외 고려 시대 문화유산으로 신라 말의 대표적인 문인 지식인 해운(海雲) 최치원(崔致遠) 및 14세기 전기의 문신 관료 정포(鄭誧)와 관련된 해운대 석각(海雲臺石刻)[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5호, 해운대구 동백섬], 문신 관료 과정(瓜亭) 정서(鄭敍)의종 때 유배된 지역으로 고려 가요인 「정과정곡(鄭瓜亭曲)」을 지은 정과정 유적지(鄭瓜亭遺蹟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4호, 수영구 망미동 산6-2번지 일원) 등이 있다. 또 사직동 석곽묘, 만덕동·망미동·연산동·구포동·거제리·명장동 등의 분묘와 더불어 출토 유물 등도 있다.

2002년 북구 덕천2동 산107-11번지 일대 실내 빙상 경기장 건립 예정 부지에서는 고려 시대 무덤 30여 기가 확인되었고, 이 가운데 11기에서 12~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고려청자 완형 20여 점, 청자 상감 모란문 대접 3점, 발형 토기, 청동 제품, 중국 동전 43점 등이 발굴되었다. 이로써 고려 시대 이후 변방으로 인식되어 온 부산 지역 사회의 사회적·문화적 위상과 함께 다른 지역 사회와의 교섭 현상 등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상당수의 문화유산을 확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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