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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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3239
한자 瀆盧國
영어의미역 Dokro-guk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집필자 백승충

    [상세정보]

    성격 소국(小國)
    관련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삼국유사(三國遺事)』|『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대동지지(大東地志)』|『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비정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던 삼한 시대 변한의 12국 중 한 나라.

[개설]
독로국(瀆盧國)은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 한조에 변한(弁韓) 12국의 하나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왜(倭)와 경계를 이룬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변한 지역에서 가장 남단에 위치한 소국임을 알 수 있다. 독로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상남도 거제도설, 부산 동래설, 다대포설 등이 있으나, 현재는 일반적으로 부산 동래설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래의 중심 지역에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이 있고, 주변 지역에는 부산 동래 패총노포동·연산동·오륜대·반여동 고분군 등 삼한 시대부터 삼국 시대의 고분군 및 철 생산 유구(遺構) 등이 산재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동래 지역에는 거칠산국(居柒山國) 또는 장산국(萇山國)·내산국(萊山國)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데, 모두 독로국의 이칭(異稱)으로 동일 정치체나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다.

[명칭 유래]
부산 ‘동래’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먼저 ‘독로국설’이 있다. 즉 독로국의 독로(瀆盧)는 ‘독(瀆)의 나라’라는 말인데, 수영강의 지류가 합류하는 동래 주변에는 탁류(濁流)가 범람하여 ‘구독(溝瀆)’이 되었을 것이고, ‘독로’를 음독하면 ‘동내’ 또는 ‘동래’가 되어 그 미칭으로 ‘동래’가 쓰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다른 견해로는 독로국의 ‘瀆(독)’은 tok(독), ‘盧(로)’는 옛 지명에서 nae(내)로 표기하였다는 점에 근거하여 瀆盧(독로)는 tok-nae(독-내)인바, tok-nae는 음운상 tong-nae(동내)로 발음되고, 신라가 통일된 이후 tok-nae를 중국에서 유명한 산둥 성[山東省]에 소재한 지명 ‘동래’를 차용하여 쓴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 ‘독로’가 가진 뜻과 지역적 조건을 기준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즉 독로국의 ‘독’은 물[水]과 관련 깊고, ‘노’는 ‘화로’로서 ‘불[火]’과 상통하여 모두 철 생산과 관련이 깊은 국명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한 시대 부산 동래 지역이 김해와 함께 철 생산과 교류의 중심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로국=동래설’의 추정도 가능하겠다.

[형성 및 변천]
『삼국사기』 지리지와 『삼국사기』 거도(居道) 열전(列傳) 등을 종합해 보면, 부산 동래 지역의 고지명인 거칠산국·장산국·내산국은 음차(音借) 또는 훈차(訓借)로 ‘거칠산[=황령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동래’·‘봉래’·‘내산’은 모두 미칭으로 추정된다. 신라 경덕왕 때 ‘거칠산군’을 개명한 ‘동래군’은 삼한·삼국 시대의 국명인 ‘독로국’과 ‘거칠산군’에서 각각 음차·훈차한 지명이었고, 그 영현인 동평현과 기장현은 각각 ‘새로운 땅’과 옛말 ‘가바라’를 훈차하여 생겨난 말이다.

독로국의 원래 치소(治所)는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산동·명륜동 일대인데, 신라가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부산 복천동 고분군 조영 집단 대신 수영강 맞은편 연산동 고분군 조영 집단을 새롭게 출현시키면서 그 치소를 배산 방면으로 옮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덕왕 대에 ‘거칠산군’을 ‘동래군’으로 개명하는데, 이때 치소를 다시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산동·명륜동 일대로 옮기면서 기존의 고유명 대신 중국식의 미칭으로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독로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남 거제도설, 부산 동래설, 다대포설 등이 있다. 지리적 조건이나 역사적 추이로 볼 때 세 가지 모두 부분적으로는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음운상으로는 거제도설이, 고고 자료상으로는 부산 동래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남 거제도설은 정약용(丁若鏞)이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 거제의 옛 이름인 ‘상군(裳郡)’과 ‘독로국’이 음으로 서로 통하고[독로=두루·도로=상], 독로국 남쪽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왜와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조건을 고려한 것이었다. 즉 고대 시기 거제도에는 ‘두루·도로’의 어원이 있었는데, 삼한 시대에는 그 음을 빌려 ‘독로’가 되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훈차하여 상(裳)을 취하여 ‘상군’이 된 것인데, 경덕왕 대에 거제군으로 개명하였다는 것이다[도로·두로→독로→상→거제].

독로국=거제도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두루-도로’의 출현 시기가 불분명하고 ‘상군’이라는 지명이 붙여진 유래에 주목하였다. ‘두루·도로’의 훈차인 ‘상군’의 상은 ‘독로’와 무관하게 문무왕 대에 처음 붙여진 것인데, ‘치마’를 뜻하는 우리말 ‘두루기’의 한자어인 ‘상(裳)’이 붙여진 것은 거제군의 지형을 본뜬 것으로 전라도의 명산인 무주현의 ‘상산(裳山)’도 비슷한 용례로 보았다.

즉 거제군은 섬으로 사방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치마’를 두른 모습과 흡사하여 후대에 그 뜻을 빌려 ‘상’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다음 부산 다대포설은 일본인 학자 요시다 도고[吉田東伍]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 설은 왜와 가까운 지리적 조건 이외에 현재까지 문헌 및 고고 자료상의 증거가 없어 성립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부산 동래설이다. 그 근거로는 먼저 음차·훈차로 볼 때 철 생산과 관련이 깊은 ‘독로’ 국명을 가진다는 점, 지리적 조건상 동래는 한 군현·왜 교섭의 요충지로서 ‘철’을 매개로 한 해상 교역의 중심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동래에는 삼한·삼국 시대에 걸쳐 부산 동래 패총·부산 복천동 고분군·연산동 고분군·연산동 토성 터 등 큰 유적지가 남아 있다는 점, 부산 동래 패총에서 제철 시설이 확인되었고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철 소재인 철정이 다량 출토되었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독로국의 위치 비정에는 몇 가지 기본 전제 조건이 따른다. 바다와 접해 있으면서 왜와 가까운 곳으로 어원적으로 ‘독로국’과 상통해야 하고, 삼한 시대 ‘국’이 존재할 만한 유적이 존재하면서 인접한 김해 구야국과 동질성을 가져야 하며, 철 생산과 유통에 적합한 대외 교섭상의 요충지이어야 한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여러 조건을 고려해 볼 때 독로국의 위치는 현재로서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산동·명륜동·수안동 일대를 중심으로 한 부산 동래설이 가장 유력하다.

[관련 기록]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서 독로국에 대해 변한 12국 가운데 한 소국으로 왜와 관련하여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다. “변진도 12개 국으로 되어 있다. 또 여러 작은 별읍(別邑)이 있어 제각기 거수(渠帥)가 있다. …… 이저국·불사국·변진미리미동국 …… 변진안야국·변진독로국·사로국·우유국이 있어서, 변한과 진한 합하여 24국이다. 대국은 4,000~5,000가(家), 소국은 600~700가로 총 4만~5만 호이다. …… 그중에서 독로국은 왜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弁辰亦十二國 又有諸小別邑 各有渠帥 …… 有已柢國·不斯國·弁·辰彌離彌凍國 …… 弁辰安邪國·弁辰瀆盧國·斯盧國·優由國·弁辰韓合二十四國 大國四五千家 小國六七百家總四五萬戶 …… 其瀆盧國與倭接界].”

부산의 동래는 『삼국사기』 권34 잡지(雜誌)3, 지리(地理)1 동래군조(東萊郡條)에 처음 동래군이 나오는데, 군명의 변화 및 영현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군을 경덕왕이 개명하였는데 지금[고려]도 그대로 따른다. 그 영현은 둘로 동평현은 본래 대증현경덕왕이 개명하였는데 지금도 그대로 따른다. 기장현은 본래 갑화량곡현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따른다[東萊郡 本居柒山郡 景德王改名 今因之 領縣二 東平縣 本大甑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機張縣 本甲火良谷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부산 동래의 옛 지명인 거칠산군과 관련하여서는 『삼국사기』 거도 열전이 참고가 된다. “거도는 그의 가계와 성씨가 전하지 않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탈해 이사금 때 벼슬하여 간(干)이 되었다. 그때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이 국경의 이웃에 끼어 있어 자못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는데, 거도가 변경의 지방관이 되어 그곳을 병합할 생각을 품었다. 매년 한 번씩 여러 말들을 장토 들판에 모아 놓고 군사들로 하여금 말을 타고 달리면서 유희 놀이를 하게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이 놀이를 ‘마기(馬技)’라 불렀다.

[군사를 동원하였을 때] 두 나라 사람들이 자주 보아 왔으므로 신라의 평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여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다. 이에 [거도는] 병마를 출동하여 불의에 쳐들어가 두 나라를 멸하였다[居道 失其族姓 不知何所人也 仕脫解尼師今爲干 時于尸山國·居柒山國 介居境 頗爲國患 居道爲邊官 潛懷幷呑之志 每年一度 集馬於張吐之野 使兵士騎之 馳走以爲戱樂 時人稱爲馬技 兩國人 習見之 以爲新羅常事 不以爲怪 於是起兵馬 擊其不意 以滅二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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