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수영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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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3420
한자 慶尙左水營城址
영어의미역 Site of Gyeongsangjwasuyeong Fortress
이칭/별칭 수영성,경상좌수영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수영동 231-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나동욱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좌수영성 건립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10월~12월 30일연표보기 -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문화재 지정 일시 1972년 6월 26일연표보기 - 경상좌수영성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
    소재지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231-1
    성격 성곽 터
    지정면적 109,090㎡
    소유자 부산광역시
    관리자 부산광역시 수영구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의 성지.

[개설]
경상좌수영성은 석축으로서 둘레 1193보(步), 높이 390m, 첩(堞)[성가퀴, 즉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375개, 옹성(甕城)[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에 원형(圓形)이나 방형(方形)으로 쌓은 작은 성) 3곳, 치성(雉城)[성벽에 붙은 적을 사살하기 위하여 원형이나 방형으로 성벽에 붙여 쌓은 성] 6곳이 있었다. 동서남북 4대문에 2층 문루(門樓)가 있었는데, 각각 영일문(迎日門), 호소문(虎嘯門), 주작문(朱雀門), 공진문(拱辰門)이라 하였고 성내에 큰 우물 3개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성내 서쪽의 높은 곳을 제외한 북, 동북, 동, 남쪽 네 곳에 수문이 설치되어 동쪽의 수영강에 유입되도록 해 놓았다. 한편 성벽에는 언양, 양산 등의 지명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동래 인근의 백성을 동원하여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1692년(숙종 18)에 좌수사 문희성(文希聖)이 크게 중수하였으며, 1872년(고종 9)에 좌수사 유기대(柳冀大)가 크게 수리하였다.

[변천]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은 종3품의 무관(武官)인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가 주재하고, 그 관하에는 거진(巨鎭)으로서 첨사영(僉使營)인 부산포진과 제진(諸鎭)으로서 후에 첨사영으로 승격된 다대포[동래], 서평포[동래], 두모포[기장], 개운포[울산], 서생포[울산], 포이포[장기], 감포[경주], 축산포[영해], 칠포[흥해] 등 2개의 첨사영과 8개의 만호영이 있어 10진 체제가 유지되었다. 임진왜란을 겪은 후 두모포, 개운포, 감포, 축산포, 칠포를 부산으로 옮겨 좌수영 관하의 전 병력을 집중시키기도 하였다.

경상좌수영성은 원래 동래 부산포에 있었으나 1406년(태종 6)에 울산의 개운포(開雲浦)로 옮겼다가 1592년 임진왜란 직전에 동래 남촌(南村)[수영동]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경상좌수영성은 경상 좌수영 관하였던 해운포영(海雲浦營)을 확장 또는 개축하여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1636년(인조 13)에는 사천(絲川)[수영천]의 범람으로 인해 감만이포(勘蠻夷浦)[감만동]로 옮겼으나 왜관과 가까워 군사 기밀이 누설될 우려가 있어 1652년(효종 3)에 또다시 동래 남촌으로 옮기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후 1895(고종 32) 7월에 군제 개혁으로 수영이 폐지될 때까지 경상좌수영성은 243년간 동래 남촌에 설치되어 있었다.

[위치]
경상좌수영성지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수영 사적 공원을 중심으로 수영동 100번지 인근은 경상좌수영성 동문 터[東門址], 수영동 231-1번지 일원은 서문 터, 수영동 286-1번지 인근은 남문 터, 수영동 163번지 일원은 북문 터로 추정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경상좌수영성의 면적은 10만 9090㎡이고, 평면 형태는 동서로 긴 타원형으로, 규모는 남북 직경 279.6m, 동서 길이 534m, 성벽의 총길이는 1,480m이다. 지적도를 통해 볼 때 남문지 외곽에 옹성 터가 확인되며, 남문 육축(陸築)[성문이 있는 곳으로 일반 성벽보다 성벽을 두껍게 축조한 것] 일부와 홍예식(虹霓式)[무지개 모양]의 개구부가 사각형의 돌기둥 위에 조각한 박견(狛犬)과 함께 수영 사적 공원 동남쪽 입구에 세워져 있다. 돌기둥에는 “신해(辛亥) 이월축(二月築)”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1692년(숙종 18) 성을 중수(重修)할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1998년 10월부터 12월 30일까지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경상좌수영성 서문 터[西門址] 일대를 발굴 조사한 결과, 서문 터는 이미 멸실된 것으로 보이며 초축(初築) 이후 두 차례 개축(改築) 흔적이 있는 외벽만 잔돌끼움 쌓기한 편축 성벽(片築城壁)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성벽은 서문 터 주변의 발굴 조사로 볼 때 점토와 잡석을 20㎝로 깔아 다진 후 가로 60~140㎝, 세로 30㎝ 크기의 화강암제 장방형 돌을 1~2단 정도 포개어 만든 기단석 위에 수직으로 쌓았으며, 그 내부는 잡석으로 뒷채움한 후 흙다짐한 형태이다.

유물은 조선 전기에 속하는 청자편, 조선 후기의 백자편, 기와편 등이 수습되었다. 또한 기록에 보이는 3개의 포루(鋪樓)[치성이나 성벽 위에 지은 누각] 중에 하나인 치(雉)도 확인되었는데, 치성 내부에서 남북 약 2m 간격의 기둥 받침으로 보이는 대형석의 배치로 볼 때 정면 1칸, 측면 3칸 정도의 팔작지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전체적으로 볼 때 동벽이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으며, 남벽도 도로 하부에 축대로 사용되고 있다. 서벽은 발굴 조사 후 수영 민속 예술관 뒤쪽에 치와 함께 정비되었으며, 북벽은 기초부만 확인되는 실정이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 9월 3일 경상좌수영성지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부산은 동남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의 방비를 위하여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가 주재하는 곳이다. 경상좌수영성은 조선 후기 해안 방어의 중심이 되는 성곽으로서 그 의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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