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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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3421
한자 尹公壇
영어의미역 Yungongdan Altar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사하구 윤공단로 112[다대동 산123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영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765년연표보기 - 윤공단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70년 12월 5일 - 지금의 위치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72년 6월 26일연표보기 - 윤공단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윤공단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사하구 윤공단로 112[다대동 산1234]
    원소재지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1동 1140-1
    성격 단(壇)
    양식 석제
    면적 보호구역 12,042㎡
    소유자 부산광역시
    관리자 부산광역시 사하구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윤흥신(尹興信)을 비롯한 군민의 충절을 기리는 제단.

[건립 경위]
1757년(영조 33) 조엄(趙曮)이 동래부사로 부임하여 충렬사(忠烈祠)에서 참배하다가 송상현(宋象賢)을 비롯한 노비까지 모셔져 있는데 윤흥신만 빠져 있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겼다. 이에 조엄윤흥신의 역사적 자취를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먼저 읍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다대포를 직접 방문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너무 오래되어 윤흥신에 대한 기록과 당시의 전황을 들려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후 1761년(영조 37) 조엄이 영남 감사가 되었을 때 경상도 내에 효열과 충절이 두드러진 사람을 포상할 것을 예조에 상소할 때 윤흥신의 증직(贈職)을 청원하였다. 그 뒤 1762년 조엄통신사로 일본에 갈 때 이해문(李海文)이 수행원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그때 조엄이해문에게 윤흥신의 역사적 자취를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해문은 일본에서 돌아와 다대진 첨사가 되어 1765년(영조 41)에 윤흥신이 순절한 곳이라 전해지는 다대포 객사(多大浦客舍)의 동쪽에 윤공단(尹公壇)을 세웠다.

[위치]
윤공단부산광역시 사하구 윤공단로 112[다대동]에 위치한다. 본래 다대진 첨사 윤흥신이 순절한 곳인 다대포 객사의 동쪽[현 부산유아교육진흥원]에 있었으나, 1970년 12월 5일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형태]
보호구역 면적은 1만 2042㎡이며, 석제단과 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석 앞면에는 ‘첨사 윤공 흥신 순절비(僉使尹公興信殉節碑)’가 음각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윤흥신의 전적이 기록되어 있다. 비석 양쪽에는 윤흥제 비(尹興悌碑)순난사민비(殉亂士民碑)가 세워져 있다. 윤흥제(尹興悌)는 함께 순국한 윤흥신의 동생이며, 순난사민비는 임진왜란 때 왜군에 대항하다 죽임을 당한 의로운 주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현황]
현재 제향은 동민을 중심으로 매년 음력 4월 15일에 지내고 있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부사놩역시 사하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다대포 전투의 흔적을 잘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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