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좌도 수군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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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3921
한자 慶尙左道水軍節度使
영어의미역 Naval Force Commander of the Gyeongsangjwa-do
이칭/별칭 경상 좌수사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관직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수영동 23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현구

    [상세정보]

    성격 관직
    품계 정3품
    제정 시기/일시 1413년연표보기 - 경상 좌·우도 수군절제사 설치
    변경시기/일시 1466년 -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를 수군도안무처치사로 개칭했다가 다시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로 개칭
    폐지 시기/일시 1895년 7월연표보기 - 폐지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231
[정의]
조선 시대 경상 좌수영을 지휘한 정3품의 무관.

[개설]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는 경상 좌도의 해안 방어를 총괄하는 직위이었고, 관하에 다수의 변진(邊鎭)을 거느리고 있었다. 몇 차례의 이영(移營)이 있었지만, 군무를 위주로 한 직무상의 두드러진 변화는 보이지 않으며 조선 후기의 선생안(先生案) 분석을 통하여 실태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전기부터 남해안의 방어를 위한 수군 편제가 마련되었다. 세조 때의 진관 체제(鎭管體制) 성립과 함께 전라도와 경상도는 중요성을 감안하여 전임 수군절도사가 각기 좌우 해역을 나누어 맡음으로써 각기 좌수영과 우수영이 등장하였다. 경상 좌수영은 특히 일본과 가까운 탓에 대일(對日) 방어를 위한 첨병격인 수군 지휘부 구실을 하였다.

[담당 직무]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는 통상 관할 영진의 수군 조련을 비롯한 군무를 주관하고, 지휘권이 미치는 관할 구역의 수령과 변장의 연 2회 인사 고과를 맡았다. 영의 군역 자원의 확보와 재정 운영, 선재(船材) 마련을 위한 봉산 관리, 군선 건조, 각종 군수품의 제작 등이 주된 업무이었다. 때로는 조운(漕運)이나 해산물의 생산 활동에도 관여하여 민정(民政)을 주도하는 각 고을 수령과 이해관계의 대립 및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관련 기록]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의 직접적인 관련 자료로는 현재 두 종의 선생안[충렬사 소장본과 『동래 영지(東萊營誌)』 수록본]이 남아 있는데, 16세기 말 이후 재임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의 교체 실태가 분석된 바 있다. 임기 만료[법정 임기 2년] 및 이임자는 29%, 재임 중 질병에 의한 사망자를 제외한 징계로 인한 교체자는 26%, 평균 재임 기간은 1년 4개월 남짓으로 직임의 중요성에 비해 불안정한 인사 처리와 직무상의 미흡함을 엿볼 수 있다. 18세기 말엽에 재임한 강응환(姜膺煥)이 당시 각종 공문서를 엮어 놓은 책인 『내영 정적(萊營政蹟)』을 통해서는 동래 부사와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 사이의 이해 차이에 따른 대응을 읽을 수 있다.

[변천]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는 1413년(태종 13) 경상 수군도절제사를 좌우 도로 나누어 임명한 것이 첫 경우로 보인다. 진관 체제가 확립된 1466년(세조 12) 무렵 수군도안무처치사로 불렀다가 이내 수군절도사로 개칭하였다. 경상도는 3명의 수사를 두되 1명은 관찰사가 겸임하고, 전임 수사는 2명이 나누어 맡았다. 좌도는 첨사영인 부산포 진관 아래 10개의 만호영을 두었다. 전라도와 경상도만 전임 수사를 2명 둔 이유는 해방(海防)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 있었음을 말할 나위 없다.

경상 좌수영은 성종 대 무렵 울산 개운포로 옮겨 갔다가, 임진왜란 무렵 옛 터전인 부산 남촌[해운포]으로 이설되었다. 그리고 1636년(인조 14)부터 1652년(효종 3)까지 10여 년간 감만포로, 그리고 다시 남촌으로 돌아왔다.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는 이후 1895년(고종 32) 7월 영이 폐지될 때까지 존재하였다. 관하 군진의 변화가 10진, 7진, 6진으로 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직위상의 큰 변화는 없었다.

[의의와 평가]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를 통해 조선 시대 지방 무관직에 대해 이해하고, 지방 통치 체제 내의 군정과 민정 간의 역학 관계를 살펴 지방 사회의 다원성을 고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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