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당 일본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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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5366
한자 老松堂日本行錄
영어의미역 Nosongdang's Travelogue of Japan
이칭/별칭 『일본행록』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장순순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저자 송희경
    권책 1책[60장]
    행자 10행 21자
    규격 23.5×15.3㎝
    어미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
    저술 시기/일시 1420년연표보기 - 송희경이 기록
    간행 시기/일시 1799년연표보기 - 간행
    소장처 전남대학교 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333
[정의]
조선 전기 송희경(宋希璟)이 회례사로 동래를 출발하여 일본에 다녀온 체험을 기록한 사행록.

[저자]
송희경[1376~1446]의 호는 노송당(老松堂)으로, 아버지는 사재 감사(司宰監事) 송현덕(宋玄德)이다. 1402년(태종 2) 문과에 급제하였고, 1411년에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20년(세종 2) 회례사로 일본에 다녀오는 등 외교적 수완이 뛰어난 인물이다. 회례사로 일본에 가면서 세종의 명을 받아 1월 15일 한양을 출발하여 그해 10월에 귀국하였는데, 『노송당 일본행록(老松堂日本行錄)』은 그때의 기록이다. 이후 『태종실록(太宗實錄)』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1420년(세종 2) 회례사로 10개월 동안 사행한 내용을 세종의 명을 받아 날짜별로 기록하였다. 『노송당 일본행록』송희경 사후 자필본으로 된 원고본이 유실되었다가 1556년(명종 11) 후손 송순(宋純)에 의해 발견되어 가보로서 보관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당시 다시 분실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던 함평 사람 정경득(鄭慶得)이 일본군이 약탈해 간 것을 얻어 필사해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1799년(정조 23)에 목활자 판본으로 인쇄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일본에는 소목본(小牧本), 추야본(萩野本), 동대본(東大本), 경대본(京大本), 회여록 수재본(會餘錄收載本), 역사 지리 수재본(歷史地理收載本) 등 대략 6종의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형태/서지]
『노송당 일본행록』은 1책[60장]으로, 각 장은 10행 21자이고, 크기는 23.5×15.3㎝이다.

[구성/내용]
사행 출발에서부터 돌아와 복명(復命)을 마칠 때까지 보고 느낌 일본의 산천, 풍물, 인정, 풍속, 정치 제도 및 저자가 겪은 모든 일과 심경을 총망라한 내용으로, 모두 227편에 달하는 시(詩)로 기록하였다. 송희경『노송당 일본행록』에서 제3자의 객관적 시각으로 조선과 다른 일본의 사회와 풍속에 대해서 접근하고, 관찰한 것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동시에 나름대로의 원인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되 문화 우월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노송당 일본행록』을 통해 사행의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송희경 일행은 1420년 춘 윤정월 15일 명을 받고 서울을 출발하였다. 이천~기흥~충주~문경~유곡~선산~성주~청도~밀양~금곡~김해를 거쳐서 2월 5일 동래 동헌에 도착하였다. 15일 부산포를 출발해 초량에서 묵고 16일 쓰시마[對馬]에 도착하였다. 일본에서 교토[京都]까지 왕복한 후 9월 26일 제포로 들어와 김해를 거쳐 서울로 향했다.

[의의와 평가]
조선 건국 직후 일본에 다녀온 회례사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료적·문헌적 가치가 크다. 조선 전기 조일[대마도 포함] 관계를 살피는 데 중요한 사료이며, 당시 조선과 대마도 지배층의 일본에 대한 인식과 당시 일본 사행에 관한 전말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 당시에는 제포 왜관이 규모가 컸기 때문에 제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송희경의 사행은 부산포에서 출발한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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