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당리동과
괴정동에 남아 있는 조선 시대 오해야항 목장 중성의 터.
[개설]
사하구 당리동과
괴정동 일대는 조선 후기의
목장리(牧場里)로 오해야항 목장의 중성(中城)이 있던 곳이다. 오해야항 목장 중성의 성벽은
낙동강에서
승학산을 거쳐 천마산 앞쪽으로 이어지며, 부산 지역의 목장 중 최대 규모였다. 조선 시대 때
허목(許穆)이 작성한 『목장 지도(牧場地圖)』[1663년 발간]를 보면 오해야항 목장은 주회(周廻)[둘레] 2만 3564m 규모로 외성·중성·내성의 3중 담장으로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태종실록(太宗實錄)』 1418년(태종 16) 1월 21일 조에 오해야항 목장의 축조에 대한 기록이 있으므로 조선 전기에 축조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1469년 발간]를 통해서 말 793필이 방목되어 절영도 목장의 소 276두, 석포 목장의 말 232필보다 월등히 많이 방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오해야항 목장 중성 터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당리동과
괴정동의 산 능선과 골짜기 일원에 위치한다.
[현황]
오해야항 목장 중성의 성벽은
사하구 당리동 채석장의 동남쪽 90m의 산 능선에서 시작되는데, 대부분 허물어져 기단부만 확인되는 구간이 많으며,
괴정동에 있는
동주대학교의 뒷산 골짜기를 거쳐 남부민동까지 간헐적으로 잔존한다. 잔존 구간의 외벽은 가로 30㎝, 세로 20㎝, 높이 40㎝ 크기의 할석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를 하였고, 성벽의 너비는 210~300㎝이다. 대부분 허물어져 4~5단 정도 잔존하나, 마하골 안쪽의 양호한 곳은 성벽의 너비 300㎝, 잔존 높이 250㎝를 보이고 있다. 이 성벽은
대티 고개를 지나
토성동으로 이어져
부산항의 남쪽으로 연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오해야항 목장은 조선 전기 부산 지역 최대 규모의 목장으로,
오해야항 목장 중성 터는 당시 동래부의 남쪽 지역 전체가 목마장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