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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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5434
한자 陶器
영어의미역 Pottery
이칭/별칭 질그릇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홍보식
[정의]
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고려~조선 시대의 도기.

[개설]
도기(陶器)란 넓은 의미에서 인공 유약이 입혀지지 않는 질그릇을 총칭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자기가 만들어지는 시기에 자기보다 소성 온도가 낮은 질그릇을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도기로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기를 토기 및 자기와 구분해서 사용한다.

[내용]
도기는 입자가 고운 백색의 점토를 바탕흙으로 사용하는데, 두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연유 도기로, 바탕흙에 모래 또는 돌 알갱이가 거의 들어 있지 않은 아주 고운 점토로 형태를 만들어 말린 후, 1,000℃ 이하에서 1차적으로 굽는다. 초벌구이 때 온도가 지나치게 상승해 버리면 표면이 단단해져 유약의 용착이 어렵게 된다. 초벌구이 된 도기는 표면 색상이 백색 또는 회백색을 띠며, 표면이 손에 묻어나기도 한다. 다음으로 초벌구이를 한 도기에 인공으로 만든 저화도의 연유를 바르고 가마에 넣어 800~850℃로 온도를 올려 굽는다. 도기에 사용된 유약은 연유 계통으로, 800~850℃의 열을 받으면 유리질화되어 표면에 피막이 형성된다. 900℃ 이상의 열을 받게 되면 연유는 소결되어 버린다.

중국의 경우, 이 도기는 전국 시기(戰國時期)부터 생산되기 시작하여 이후 자기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면서 지속되었고, 당나라 시기에 당삼채라는 시유 도기의 발전기를 맞이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4세기 후반에 고구려에서 생산되었으며, 6세기에 들어오면 백제에서도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신라에서는 7세기 초에 생산되었으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인 8세기 대에는 도기의 생산량이 증대되었다. 부산 지역에서 이 연유 도기는 기장군 철마면고촌리 유적(古村里遺蹟) 도로에서 출토되었는데, 시기는 7세기 전반이다. 고촌리 유적에서 출토된 연유 도기는 유색이 녹색을 나타내어 녹유 도기로도 불리는데, 신라의 서울인 경주에서 생산되어 고촌리 유적으로 들어온 것이다.

둘째는 소성 온도 1,200℃ 전후에서 구워져 흡수성이 조금 있고, 두드리면 둔하고 탁한 소리를 내며, 강도가 자기보다 약하고 투명도가 없는 점이 특징인 도기이다. 유약을 바르는 것과 바르지 않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고려 시대 이후의 청자·분청사기·백자를 제외한 질그릇을 말한다. 도기는 서민들의 일상생활 용기로서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고려·조선 시대의 생활 유적에서 주로 출토된다. 부산 지역에서도 고려 시대 이후에 조영된 동래 고읍성(東萊古邑城)·당감동 토성·만덕사지(萬德寺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기장군 일광면 삼성리의 기장 경기장 부지 등의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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