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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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5686
한자 梵魚寺
영어의미역 Beomeo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연주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678년연표보기 - 창건
    건립 시기/일시 835년연표보기 - 창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의해 소실
    중수|중창 시기/일시 1602년연표보기 - 중건 뒤 곧 화재로 소실
    중수|중창 시기/일시 1613년연표보기 - 대웅전, 용화전 등 중창
    중수|중창 시기/일시 1684년연표보기 - 비로전 건립
    중수|중창 시기/일시 1700년연표보기 - 팔상전, 불이문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66년 2월 28일 - 부산 범어사 대웅전 보물 제43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부산 범어사 삼층 석탑 보물 제250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10월 19일연표보기 - 『삼국유사』권4~5 보물 제419-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6년 2월 7일 - 부산 범어사 조계문 보물 제1461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7년 9월 18일 - 부산 범어사 목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 보물 제152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1966년 1월 13일 - 부산 범어사 등나무 군락 천연기념물 제17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1972년 6월 26일연표보기 - 당간지주 외 31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
    최초 건립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성격 사찰
    창건자 의상 대사[추정]
    전화 051-508-3722
    홈페이지 범어사(http://beomeosa.co.kr)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건립 경위 및 변천]
범어사(梵魚寺)라는 명칭은 금정산(金井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23권 동래현 산천조(山川條)에는 “현의 북쪽 20리에 있으며, 산 정상에는 3장(丈)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자이며, 깊이는 7치쯤 된다.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안에서 놀았다 하여 산을 이름 지었고, 이에 절을 짓고 범어사(梵魚寺)라 불렀다”고 사명을 지은 경위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법장 화상전(法藏和尙傳)』에서 범어사는 해동 화엄종(海東華嚴宗) 십찰 가운데 하나로 되어 있으며,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신라의 화엄십찰을 열거하면서 ‘금정범어(金井梵魚)’를 언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범어사금정산이라는 명칭은 신라 시대부터 존재했으며, 범어사는 처음에 화엄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범어사의 창건과 관련된 문헌으로는, 1700년(숙종 26) 동계(東溪)라는 사람이 편찬한 『범어사 창건 사적(梵魚寺創建事蹟)』이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범어사는 당 문종 태화(太和) 19년 을묘 곧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되었다. (중략) 당시 왜인이 신라를 침범하여 왕이 근심하자, 문득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의상(義湘)을 청하여 화엄신중(華嚴神衆) 기도를 할 것을 권하였다. 대왕이 의상을 청하여 함께 금정산 아래에서 7일 동안 화엄신중을 독송(讀誦)하면 왜병이 자연히 물러간다는 것이었다. 왕이 그대로 하였더니 왜선들끼리 서로 공격하여 모든 병사가 빠져 죽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의상을 예공 대사(銳公大師)로 삼고 범어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범어사 창건 사적』에 따르면, 범어사는 당나라 문종 태화(太和) 19년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되었는데, 태화 연간은 827년부터 835년까지 9년간이므로 태화 19년은 착오일 것이다. 간지의 을묘는 태화 9년, 신라 흥덕왕 10년[835]에 해당한다. 한편에서는 흥덕왕 때라면 826년에서 835년까지이므로 702년에 죽은 의상 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한 기록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의상이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670년(문무왕 10) 이후에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는가 하면, 『삼국유사』의 기록과 같이 678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현재 범어사에는 초창기에 해당하는 석조 유물이나 자료가 없고 의상 당시의 화엄종에서는 비로자나불이 출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문으로 남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다른 곳을 비정하기도 한다. 이상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범어사는 신라 통일기 초반인 문무왕 때 소규모 내지는 현재의 위치가 아닌 곳에서 창건되었고, 현존하는 범어사흥덕왕 때 비로소 대규모 사찰로 건립된 것으로 보아진다. 범어사의상이 창건하고 의상의 제자 표훈(表訓)이 주석한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이며, 또 왜구를 진압하는 비보사찰(裨補寺刹)의 하나로서 중요한 사찰이 되었다.

신라 시대에 창건된 범어사임진왜란 때 관련 기록이 모두 소실되는 바람에 그 변천 과정을 잘 알 수가 없다. 범어사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뒤 10여 년을 폐허로 있다가 1602년(선조 35)에 관선사(觀禪師)가 중건하였으나 곧 또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1613년(광해군 5)에 묘전(妙全), 현감(玄鑑), 계환(戒環), 법인(法仁), 천원(天元), 덕균(德均) 등이 법당 및 요사채, 불상과 시왕상(十王像), 그리고 필요한 집기들을 갖추어서 중창하였다. 1684년(숙종 10)에 해민 화상(海敏和尙)의 주도로 비로전이 건립되었고, 1700년(숙종 26)에는 명학 화상의 주도로 팔상전과 불이문이 건립되었다. 그 뒤 범어사는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면서 사원의 규모를 넓혔으며 1900년대 들어 선찰 대본산(禪刹大本山)이란 이름 아래 민족적인 사찰로서 자리매김하면서 근대 민족 불교를 지향하는 중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활동 사항]
범어사에서 주석한 고승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서 논의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한국 근대 불교계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범어사는 1900년을 전후하여 많은 고승들이 선(禪) 수행에 정진한 것과 관련이 매우 깊다. 경허 선사(鏡虛禪師)범어사에서 1900년에 개설된 선원(禪院)을 주도한 바 있고, 1902년에는 『선문 촬요(禪門撮要)』를 편찬하였으며 1903년에 결사(結社)를 주도하였다. 이러한 경허 선사의 활약에는 범어사 주지를 역임한 오성월(吳惺月)의 노력이 컸다.

1899년 음력 10월 범어사 금강암(梵魚寺金剛庵) 주지 월송의 합의로 금강암에 선원을 개설하였고, 1901년에는 해인사(海印寺)[사적 제504호] 수좌와 함께 발기하여 내원암 선원을, 1905년 이담해, 포응 등과 함께 내원암 선원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1909년에는 안심료와 응당, 1910년 10월에는 범어사 대성암(梵魚寺大聖庵) 등에 선원 선회를 창설하여 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범어사는 1900년대에 선풍 진작 도량으로 전환함으로써 불조혜명(佛祖慧命)을 잇는 중심 도량이며 선 수행의 거점 도량이 되었다. 이는 경허 선사에게서 크게 영향을 받은 범어사가 선 사상을 강조하면서 1910년대에 조선 총독부가 발포(發布)한 사찰령에 반대하는 임제종(臨濟宗) 운동과 항일 민족 불교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우리 민족의 독자성을 말살시키려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대해 범어사한용운(韓龍雲), 오성월 등과 백양사의 박한영(朴漢永) 등이 중심이 되어 영남과 호남의 승려들이 1911년 1월에 순천 송광사(松廣寺)에 모여 임제종을 세우기로 결의하였다. 곧 1911년 음력 1월 25일에 범어사는 전 불교계에 ‘선종 수찰(禪宗首刹)’이라는 공문을 보내고 범어사에 임제종의 총무원을 옮긴 뒤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자 조선 총독부는 임제종을 해산시켰다. 이렇듯 190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범어사가 전개한 선풍 진작 운동은 근대 불교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범어사의 이 같은 활동 배경에는 경제적 기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범어사는 1811년부터 1930년 사이에 사찰 재산을 극대화하였는데, 당시 불교계가 불교의 현실을 자각하면서 원활한 사원 경영을 위해 계(契)를 조직한 것과 관련이 깊다. 당시 조직한 계 가운데 갑계(甲契)가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기반의 확충은 훗날 포교당 설치와 같은 교육 사업은 물론 선풍(禪風) 진작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1950년대에는 승려 동산(東山)의 주도하에 불교 정화 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현대 불교의 변화를 주도하였는데, 이는 근대 불교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구축한 범어사의 사상적인 맥락을 계승한 것이었다.

한편, 범어사는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서 1906년 선진 교육 제도 도입에 자극을 받은 이보담, 홍월초 등이 명정학교(明正學校)를 설립하였다. 명정학교는 주로 무산 자녀들을 대상으로 교육하였다. 1917년에는 통도사(通度寺), 송광사, 석왕사 등 3개 사찰과 연합하여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인수하고 경영을 하였다. 1921년에는 ‘싯달야학교’라는 포교당을 동래에 설치하였는데 이는 종교적 기능뿐 아니라 교육 계몽적인 기능까지도 수반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서울 인사동 범어사 포교당을 선학원으로 바꾸었다가 안국동으로 이전하기도 하였다. 범어사의 이 같은 교육 활동을 통해 배출된 청년 승려들은 민족 운동에 깊이 관여하였다. 이는 3·1 운동 당시 한용운을 중심으로 한 중앙 학림과 지방 사찰, 지방 학림, 명정학교의 젊은 학승 및 학생들이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범어사금정산 동쪽의 넓은 산지를 이용한 산지 가람(山地伽藍)으로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이고 있다. 창건 당시의 가람 배치 상황은 알 수 없으나, 1700년에 편찬된 『범어사 창건 사적』에 따르면, 2층 불전인 미륵전(彌勒殿)과 세 칸의 비로전(毘盧殿), 세 칸의 대장전(大藏殿), 천왕신전(天王神殿) 등이 건립되었고, 유성전(流星殿), 대당(大堂), 이협당(二俠堂) 등의 중료(衆寮) 360방이 건립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는 있으나 창사 이후 임진왜란과 불의의 화재로 많은 변화를 겪어야 하였다.

1613년에 묘전·현감·계환·법인·천원·덕균 등이 법당 및 요사채 등을 갖추어 중창하면서 오늘날의 가람 배치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존하는 건물 터를 중심으로 가람의 배치 형태를 살펴보면, 일주문(一柱門)·천왕문(天王門)·불이문(不二門) 등을 차례로 배치하고 7m 높이의 축대 위에 보제루(普濟樓)를 배치하였다. 보제루 좌우에는 심검당(尋劍堂)·비로전·미륵전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일반적으로 심검당과 대칭이 되는 곳에 강원인 강설당(講說堂) 같은 건물이 놓이는데, 범어사는 특이하게 이곳에 법당을 배치하였다.

비로전과 미륵전의 뒤쪽으로는 선원(禪院)이 있으며, 선원 바로 아래 낮은 지역에는 요사채들이 있고 그 옆에는 종무소 건물이 있다. 또 심검당 뒤쪽으로 강당(講堂)이 있고, 강당 뒤로 후원(後院)이 있다. 대웅전은 이들 건물보다 7~8m 높은 축대 위에 있는데, 대웅전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관음전이 있고, 관음전 옆으로 노전승(爐殿僧)의 거처인 일로향각(一爐香閣)이 있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왼쪽에는 명부전(冥府殿)이 있고 그 뒤쪽으로 서향각(西香閣)과 크고 작은 요사채가 있으며, 그들보다 한 단 높은 곳에 비켜서 팔상전(捌相殿)·독성각(獨聖閣)·나한전(羅漢殿)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특이하게 산령각(山靈閣)이 있다.

이렇듯 범어사의 가람 배치는 상·중·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건물들이, 중간에는 보제루 주위의 당우들, 하단에는 보제루 아래쪽의 일주문·천왕문·불이문을 중심으로 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 같은 3단의 배치는 자연스럽게 공간적 위계(位階)를 갖게 된다. 불전(佛殿), 요사(寮舍)들을 고유의 기능에 따라 적절히 안배한 범어사의 3단 배치는 산지 가람의 지형에 따른 것으로, 범어사가 화엄십찰의 하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람의 배치 형태는 『화엄경(華嚴經)』의 이상향인 화장 세계(華藏世界)의 구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범어사는 금어선원과 범어사 승가대학을 갖추고 있으며, 부산을 비롯하여 경상남도, 경상북도, 경기도, 서울, 대구, 울산 등 전국에 걸쳐 원효암[부산], 흥부암[김해], 천성사[울산] 등 170여 개의 말사와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매년 범어사가 실시하는 템플 스테이는 사찰에서 수행자들의 일상과 수행의 일부를 경험하는 사찰 문화 체험 프로그램으로 참선(參禪)을 위주로 한다.

[관련 문화재]
보물 제434호로 지정된 부산 범어사 대웅전(釜山梵魚寺大雄殿)범어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재 중 하나인 보물 제250호인 부산 범어사 삼층 석탑(釜山梵魚寺三層石塔), 보물 제1461호인 부산 범어사 조계문(釜山梵魚寺曹溪門)이 있다. 이밖에 보물 제419-3호인 『삼국유사(三國遺事)』권4~5, 보물 제1526호인 부산 범어사 목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釜山梵魚寺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천연기념물 제176호인 부산 범어사 등나무 군락[釜山梵魚寺등나무群落] 등 국보급 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또한 각종 건물과 전적(典籍)을 비롯하여 총 31건이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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