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복천동 고분군 11호 출토 금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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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5770
한자 釜山福泉洞古墳群十一號出土金銅冠
영어의미역 Gilt-bronze Crown from Bokcheon Tombs No.11
이칭/별칭 복천동 11호분 출토 금동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6[복천동 50]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현주 2

    [상세정보]

    성격 의기|금동관
    재질 동판|금 아말감
    크기 23.5㎝[높이]|18.8㎝[직경]
    출토|발굴 시기/일시 1980년~1981년연표보기 -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 대한 제1차 발굴 조사 시 발견
    보수|복원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 국립중앙박물관 보존 처리실에서 복원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1년 6월 9일 - 부산 복천동 고분군 사적 제273호로 지정
    현 소장처 국립김해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232
    원소재지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출토|발견지 부산 복천동 고분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의 금동관.

[개설]
부산 복천동 고분군 11호 출토 금동관(釜山福泉洞古墳群十一號出土金銅冠)은 1980년부터 1981년까지 실시된 부산 복천동 고분군[사적 제273호]에 대한 제1차 발굴 조사 때 발견되었다. 5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1981년에 국립중앙박물관 보존 처리실에서 복원하였으며, 현재는 국립김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관(冠)이란 의례적인 행사에서 착장자의 신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치레걸이의 하나로, 머리에 쓰는 것이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 11호 출토 금동관은 세장한 대륜부(臺輪部)에 3개의 수지형 입식을 세우고 달개[영락(瓔珞): 매달은 장식]를 매달은 형태로, 신라의 전형적인 형태인 산자형(山字形) 금[동]관의 시원적인 형태로 평가되고 있다.

[형태]
가는 띠 모양으로 머리에 두르는 대륜부는 폭이 비교적 좁고 평면 원형을 이루며, 크기는 18.7㎝이다. 후면의 대륜 양 끝 부분이 7.1㎝ 정도 틈이 벌어진데다, 양 끝을 ‘L’ 자형으로 약간 도려내고 그 안쪽에 구멍을 뚫었으며, 내면에 가죽이 부착되었던 흔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길이를 조절하여 착장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대륜부는 폭 2.9㎝, 길이 50㎝ 크기의 청동 판에 앞뒤 양면은 금도금하였다. 대륜부 표면에는 상하 테두리를 따라 연속 물결무늬, 그리고 그 내부에 점을 찍는 파상 점열문(波狀點列文)이 베풀어졌다. 이들 문양은 하나의 선상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정교하게 점으로 찍는 축조 기법(蹴彫技法)[금속 조각 기법의 하나로, 금속판에 끌로 점선 무늬를 만들어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입식(立飾)[세운 장식]은 11㎝ 간격으로 대륜부의 이면에 붙여 각각 2개의 못으로 고정시켰다. 입식의 형태는 양쪽으로 대칭되는 나뭇가지 형태[樹枝式]로, 내·외면이 모두 금으로 도장된 청동 판을 오려서 만들었다. 3개의 입식은 줄기의 양측에서 네 방향으로 뻗었으며, 서로 대칭되게 3단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길이, 선단부의 보주(寶珠)와 가지 형태, 달개의 부착 부위 등에서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

정면의 입식은 높이 23.5㎝로, 맨 윗부분인 선단부는 폭이 넓은 보주형을 띤다. 가지의 하단 최대 폭은 1.9㎝, 상단 최소 폭은 1.2㎝로 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면서 아래를 향해 둥글게 감긴다. 입식 전면에는 금동으로 된 달개를 매달았는데, 달개는 내면이 오목한 원형으로 상부에 뚫린 구멍에 청동 실을 끼워 입식과 연결한 후 2회 정도 꼬아서 고정하였다. 중앙의 입식은 좌우 양옆의 입식에 비해 많은 양의 달개를 달기 위해 줄기와 가지의 외연을 따라 두 줄로 매달았다.

좌우에 위치한 입식은 높이 21.2㎝로 중앙의 입식보다 약간 작고, 선단부의 보주형 내부를 세 잎[三葉] 모양으로 도려낸 투조 기법(透彫技法)을 사용하여 장식성에 변화를 주었다. 달개는 중앙의 정면 입식에 비해 적은 양을 달기 위해 길이 방향으로 일렬로 배치하여 각각 65개의 달개를 매달기 위한 구멍이 있고, 남아 있는 달개는 6개 정도이다. 이러한 형태의 입식이 있는 관은 외관으로, 내부에 유기질제의 내관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 11호 출토 금동관의 출토 정황을 살펴보면, 주인공의 오른편에 장식 대도(裝飾大刀) 3점과 함께 놓여 있었는데, 장식 대도의 환두부(環頭部)[고리 모양 손잡이 부분] 쪽에 초본류를 타래 모양으로 엮어 만든 대(臺)를 만들어 그 위에 얹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부산 복천동 고분군 11호 출토 금동관은 삼국 시대 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3개체의 관 중 유일한 가야의 관으로 가장 고식(古式)에 해당한다. 복원하였을 때 입면에서 볼 때 선단부가 내부로 휘어져 안정감을 주며, 입식의 형태가 가야 관의 특징인 수지형(樹枝形)을 띠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부산 복천동 고분군 11호 출토 금동관은 현재까지 알려진 몇 안 되는 가야 관 중의 하나이다. 신라 관인 산자형(山字形)의 금[동]관은 정형성을 띠면서 시간적 추이에 따라 변화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초화형(草花形) 혹은 수지형을 띠는 가야의 관은 정형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 가운데 부산 복천동 고분군 11호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가야의 수지형을 띠면서도 줄기를 중심으로 3개의 가지가 대칭을 이루고, 가장 고식이라는 점에서 신라의 산자형 금[동]관의 형식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인 형식을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5.21 일부 내용 삭제 삭제: 이는 <지명 검색어="" 검색="">신라</지명> 고분에서 금관을 머리에 착장한 채 매장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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