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터널 위 민간인 학살

대표시청각
button
관련항목 페이징
  • URL Copy
  • twitter
  • facebook
항목 ID GC04205903
한자 釜山-民間人虐殺
영어의미역 Origin of Hamajeong Pavilion in Busanjin-gu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기진

    [상세정보]

    성격 사건
    관련인물/단체 부산형무소|국민보도연맹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0년 7~8월연표보기 - 부산형무소 간수들이 다수의 시신을 매장
    발단 시기/일시 1950년 6월 25일 - 6·25 전쟁 발발
    발생|시작 장소 부산 터널 위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지도보기
[정의]
1950년 6·25 전쟁 발발 직후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 있는 부산 터널 위 야산에 부산형무소 재소자 시신 수백 구를 매장한 사건.

[역사적 배경]
6·25 전쟁이 일어나고 전선이 급속히 남하하면서 부산형무소는 일반 범죄자 외에 사상범과 국민보도연맹 회원들로 넘쳐났다. 1950년 7~8월 군과 경찰은 좌익 세력이 인민군에 동조하여 후방에서 봉기할지 모른다는 우려로 부산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 회원들을 집단적으로 살해하였다.

[경과]
당시 부산형무소 간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6·25 전쟁이 시작된 직후 부산형무소 마당 한쪽에 목조 가건물 형태로 교수대가 설치되었다. 여기서 교수형이 이루어졌는데 한 명당 대략 20분이 소요되었고, 시신들은 부산 터널 위 야산 등지에 매장되었다. 그 무렵 부산형무소 인근에 살았던 강 모[2001년 증언 당시 75세] 씨는 “시신을 묻는 날이면 대낮부터 부산형무소 재소자들이 삽을 들고 나와 커다란 구덩이를 팠고, 저녁 무렵 시신을 실은 트럭들이 나타나 구덩이 속으로 시신을 쏟아 부었다.”라고 증언하였다. 그는 “시신이 묻힌다는 소식이 들리면 주민 수십 명이 나와 이를 지켜보곤 하였다.”면서 “다들 국민보도연맹 회원들이 무슨 죄를 지어 저리도 많이 죽이나 하고 궁금해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하였다.

[결과]
목격자들은 부산 터널 위 야산에 최소 수백 구의 시신이 묻혔다고 증언하였다. 시신들이 자연사에 의한 것인지, 살해된 것인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신을 묻는 날이 있었다.”라는 증언을 보면 어느 정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장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민들은 부산형무소 안에서 총 소리를 들은 기억은 없다고 하였다. 이는 교수형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부산 터널 위 민간인 학살 현장은 지금 건물이 들어서고 숲이 우거져 정확한 매장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부산 터널 위 민간인 학살 사건은 다른 암매장 사건과 달리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는 전 과정이 지역 주민들에게 노출되었다. 매장지가 당시 부산형무소에서 매우 가깝고 또 언덕 위에 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시신 매장에 부산형무소 재소자가 동원된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2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집필항목 검색 닫기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참고문헌 검색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