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대」

대표시청각
button
관련항목 페이징
  • URL Copy
  • twitter
  • facebook
항목 ID GC04206712
한자 太宗臺
영어의미역 Taejong-dae in Busan
이칭/별칭 「바다로 내달린 기암절벽 태종대」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집필자 조정효

    [상세정보]

    성격 전설|지명 유래담|암석 유래담
    주요등장인물 태종 무열왕|조선 태종|여인
    모티프유형 태종대 명칭의 내력|망부석 전설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7년 2월 26일 - 『부산 문화 관광 길잡이』에 「바다로 내달린 기암절벽 태종대」라는 제목으로 수록
    관련 지명 태종대 -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산29-1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에서 태종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태종대」의 전반부는 태종 무열왕이 활을 쏘았다고 하여, 또는 조선 태종과 동래 부사가 기우제를 올려 태종우가 내렸다고 하여 명명된 지명 유래담이고, 후반부는 여인이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덩이로 굳었다는 망부석(望夫石) 유래담이다. 태종대는 1972년 6월 26일에 부산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가, 이후 2005년 11월 1일에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영도 해안의 최남단에 자리한 태종대는 온갖 모양의 거대한 소나무와 절벽이 기묘하게 남아 있어 절경을 자랑한다. 그 이름에 관하여 두 가지 전설이 전한다. 특히 조선 태종과 관련된 전설은 태종대가 국가의 안녕을 비는 기원의 성소였음을 알려 준다고 하겠다.

[채록/수집 상황]
2007년 부산광역시에서 간행한 『부산 문화 관광 길잡이』에 「바다로 내달린 기암절벽 태종대」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채록 시기와 채록 장소는 분명하지 않다.

[내용]
태종대의 이름에 관한 전설은 두 가지가 전한다. 먼저 『동래부지』에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이 이곳에 와서 활을 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므로 태종대라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의 태종이 1419년 큰 가뭄이 들자 그해 5월 하늘에 빌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 오는데, 그로부터 음력 5월 초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太宗雨)’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이후로 동래 부사도 태종을 본받아 가뭄이 들 때마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렸는데, 그래서 태종대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태종대의 신선 바위 위에 돌 하나가 따로 박혀 있다. 옛날 왜구에 끌려간 지아비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느 여인이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찬바람이 불건 땡볕이 내리쬐건 일본이 멀리서나마 바라보이는 바다 쪽을 향하여 이곳에서 줄곧 돌처럼 기다리다가 마침내 신선 바위 위에 돌덩이로 굳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 돌을 망부석이라 한다.

[모티프 분석]
「태종대」의 주요 모티프는 ‘태종대 명칭의 내력’, ‘망부석 전설’ 등이다. 절개 굳은 아내가 외지에 나간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어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전설은 한국의 여러 지방에 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朴堤上)[363~419]의 아내에 대한 전설을 들 수 있는데, 이 역시 망부석 모티프를 기본 축으로 한다. 원래 날이 맑은 날이면 태종대에서는 대마도까지 보인다는 등의 이러한 사항이 바탕이 되어 「태종대」와 같은 전설이 전승되고 있다.

3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집필항목 검색 닫기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참고문헌 검색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