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해방 운동사 걸개그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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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6915
한자 民族解放運動史-事件
영어의미역 A scandal Involving a Mobile Picture for the History of National Liberation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성격 민중 운동
    관련인물/단체 부산미술운동연구소|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건설준비위원회
    발생|시작 시기/일시 1989년 3월연표보기 - 『민족 해방 운동사』 걸개그림 완성
    종결 시기/일시 1989년 6월 30일연표보기 - 경찰이 한양대학교에서 『민족 해방 운동사』 걸개그림을 훼손
    발단 시기/일시 1988년 12월 -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건설준비위원회에서 『민족 해방 운동사』 걸개그림 제작 결정
    전개 시기/일시 1989년 4월 14일 - 서울대학교에서 『민족 해방 운동사』 걸개그림 전시
    전개 시기/일시 1989년 4~5월연표보기 - 부산에서 『민족 해방 운동사』 걸개그림 전시
    발생|시작 장소 서울대학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종결 장소 경희대학교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
[정의]
1989년 부산을 비롯한 5개 지역 미술 단체가 제작한 걸개그림을 경찰이 파손한 사건.

[역사적 배경]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전국적으로 민주 노조 운동이 활발해지는 한편 대학가에서는 조국 통일 운동이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88년 12월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건설준비위원회[약칭 ‘민미련 건준위’]는 지역 간 연대 창작물인 대하 걸개그림 『민족 해방 운동사』를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경과]
부산에서는 부산미술운동연구소와 부산 지역 대학미술패연합이 『민족 해방 운동사』의 제작에 참여하였다. 작품은 총 11폭으로 이루어졌는데, 1폭의 크기가 세로 2.6m에 가로 7m로, 총길이는 77m에 달했다. 이 그림은 부산을 비롯한 전국 5개 지역의 미술 집단과 30개 대학의 미술 패 회원들이 참여하여 3개월 만에 완성하였다. 이 중 부산 지역이 맡은 부분은 여섯 번째 폭인 「반공 정권과 4월 혁명」, 일곱 번째 폭인 「민주화 운동과 부마 항쟁」이었다.

완성된 『민족 해방 운동사』는 1989년 4월 서울대학교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야외 전시로 진행되었다. 이후 『민족 해방 운동사』는 전국 각지의 대학과 광주 금남로를 순회하며 전시되었고, 부산에서는 부산대학교동아대학교 그리고 산업대학교[현 경성대학교]와 부산역 광장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한편 개막전 열림 고사에서 화가 홍성담이 『민족 해방 운동사』를 평양 청년 학생 축전에 출품할 것을 선언한 데 따라 평양으로 작품 슬라이드를 보내게 되었다. 평양에서 『민족 해방 운동사』는 실물 크기로 복원 제작되어 원산, 함흥, 개성 등지에서 순회 전시되었다. 6월 30일 한양대학교에서 전시되던 『민족 해방 운동사』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약칭 전대협]의 집회에 난입한 백골단에 의해 찢겨지고 불태워지고 말았다.

[결과]
민족 해방 운동사 걸개그림 사건으로 홍성담 민미련 건준위 위원장을 비롯한 8명의 미술가들이 공안 당국에 의해 구속되고, 8월 4일 부산미술운동연구소를 포함하여 전국의 민미련 사무실이 수색 영장 없는 불법 수색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부산 지역은 인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사무실이 폐쇄되고 전체 회원이 수배 대상이 되었다. 이에 부산미술운동연구소는 임시로 경성대학교에 작업 공간을 마련하고, 한편으로 현장의 요구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전국적인 미술가 구속과 탄압에 대한 대응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0월에 ‘부활하는 항쟁 전’과 ‘구속 미술인 작품 전’을 개최하였다.

[의의와 평가]
전국의 미술집단과 대학 미술패의 결집된 창작 열의를 동력으로, 단일한 주제를 가지고 지역 간 연대를 이루면서 미술 작품을 협업 생산하는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또한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간의 미술 교류가 성사되었다는 점도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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