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찰 마을[부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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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8221
한자 譏察-釜谷洞-
영어의미역 Gichal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기찰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진모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04년 10월 -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 기찰동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 기찰동에서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 부곡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36년 -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 부곡리에서 경상남도 부산부 부곡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2년 - 경상남도 부산부 부곡동에서 경상남도 부산부 동래출장소 부곡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57년 - 경상남도 부산부 동래출장소 부곡동에서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부곡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부곡동에서 부산직할시 금정구 부곡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3년 - 부산직할시 금정구 부곡동에서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으로 개편
    자연 마을 기찰 마을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기찰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기찰(譏察)은 기찰 포교(捕校)를 주재시켜 왕래하는 통행자의 증명서를 조사하여 외국 첩자나 수상한 사람들을 검문하는 한편 상인들의 물품을 조사하는 검문소이다. 기찰 마을은 조선 시대 이곳에 십휴정 기찰(十休亭譏察)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형성 및 변천]
기찰 마을[부곡동]은 조선 시대 영남 대로 황산도의 경유지로서 십휴정 기찰이 있었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 관해조(官廨條)에 “양산군 성 밖에 있던 십휴정 기찰이 1680년에 동래 부사 조세환(趙世煥)에 의해 부의 북쪽 10리에 이건하였는데, 규모는 6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래부지』에는 동래부 북면 부곡리로,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1904]에는 기찰동으로 나타나며, 전씨(全氏) 1호, 김씨(金氏) 2호, 손씨(孫氏) 1호, 양씨(梁氏) 1호, 방씨(方氏) 1호, 이씨(李氏) 1호, 최씨(崔氏) 1호 등 8호가 거주하였고, 이 가운데 김씨가 1600년경 기찰 마을 입향조로 알려져 있다.

1914년 동래군 북면 부곡리로 개칭하였다가 1936년 부산부 부곡동이 되었다. 북면사무소가 기찰 마을에 있었으나 1930년대 말 경 북면 남산리로 이전하였다. 1957년 부산시 동래구 부곡동으로 개칭되었다. 1988년 1월 1일 동래구에서 분구되어 금정구의 관할이 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기찰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기찰 마을 동쪽에 있는 윤산이 배후 산지이며, 서쪽으로 범어천[온천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부산가톨릭대학이 있는 윤산 골짜기를 업은골이라 한다.

[현황]
기찰 마을은 황산도(黃山道) 국도 변에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웃기찰[지금 금정보건소 일대]과 아랫기찰[현 롯데 마트와 SK 아파트 일대]로 나누어져 있었다. 1940년경에는 35가구 정도가 거주하였으나 현재는 주거 밀집지로 변하여 옛길과 윤산 기슭의 단군 신당(檀君神堂)[기찰 마을의 수호신으로 학머리 형상의 명당지로 전하는 금정구 부곡 3동 산14번지에 있음]만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주요 기관으로 금정구청, 금정구의회, 부곡 3동 주민자치센터, 금정구보건소, 금정소방서, 금정 청소년 회관, 금정 문화 회관, 금정문화원, 금정 청소년 수련관, 금정농협 기찰지점, 한국 순교자 기념관, KT 금정지점 등이 있으며, 교육 기관으로는 부산가톨릭대학을 비롯해 부산예술고등학교, 지산고등학교, 부산예술중학교, 금양초등학교 등이 있어서 교육 행정 문화 중심 지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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