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을 노래한 고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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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10040
한자 洛東江-古典文學
영어의미역 Classical Literature Singing the Nakdong River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집필자 권정원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고려 후기 - 「동박시어장향량주주황산강구점(同朴侍御將向梁州舟黃山江口占)」
    특기 사항 시기/일시 고려 후기 - 「황산가정중부울주소작차기운(黃山歌鄭仲孚蔚州所作次其韻)」
    특기 사항 시기/일시 고려 후기 - 「황산가(黃山歌)」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 전기 - 「낙강범주시발(洛江泛舟詩跋)」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 전기 - 「도삼차수(渡三叉水)」 2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491년 6월 1일[조선 전기]연표보기 - 「낙강범주시발(洛江泛舟詩跋)」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 중기 - 「황산강(黃山江)」 2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 중기 - 「황산강주중즉사(黃山江舟中卽事)」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 중기 - 「황산강유감(黃山江有感)」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 중기 - 「주행소황산강(舟行泝黃山江)」 2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 중기 - 「자칠점산환범주소황산강(自七點山還泛舟泝黃山江)」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 중기 - 「만범삼차강(晩泛三叉江)」 4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 후기 - 「양산차운정포황산가(梁山次韻鄭誧黃山歌)」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 후기 - 「도락동강(渡洛東江)」
    특기 사항 시기/일시 개항기 - 「도락동강(渡洛東江)」
    특기 사항 시기/일시 개항기 - 「삼차유수(三叉流水)」
    특기 사항 시기/일시 연대 미상 - 「황산강(黃山江)」 2수
    관련 장소 낙동강 - 부산광역시 일대
[정의]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 사이에 부산 지역을 흐르는 낙동강을 대상으로 지은 한시나 산문 등의 문학 작품.

[개설]
‘낙동(洛東)’은 ‘낙양의 동쪽’에서 유래된 말이다. 낙동강의 상류인 상주를 해동의 낙양이라고 하였는데, 강이 상주의 동쪽으로 흐른다고 하여 낙동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낙동강은 강원도 함백산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강의 상류 분지에는 안동, 중류 분지에는 대구, 하류에는 낙동강 삼각지와 김해평야가 있다.

그러므로 낙동강을 어느 지역에 귀속시켜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실제 안동 지역에서 바라본 낙동강에 대한 작품은 많으나, 양산·김해 등 부산 근교에서 바라본 낙동강에 대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낙동강은 시대에 따라 이름이 달라 황산강(黃山江), 삼차강(三叉江), 삼차수(三叉水), 삼차수(三釵水), 삼분수(三分水), 창강(蒼江) 등으로도 불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산 인근을 흐르는 낙동강을 노래한 고전 문학을 선별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명산·명수 인근에는 반드시 누정 등 명소가 있기 마련이니 이들 명소들이 낙동강 하류의 시문 창작의 배경이 되었다.

[낙동강을 노래한 한시]
낙동강을 노래한 한시는 대단히 많다. 하지만 낙동강 하류에 속하는 부산 인근 지역에서 낙동강을 노래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22수 정도의 한시를 확인할 수 있는데, 고려 시대에는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동박시어장향량주주황산강구점(同朴侍御將向梁州舟黃山江口占)」, 이곡(李穀)[1298∼1351]의 「황산가정중부울주소작차기운(黃山歌鄭仲孚蔚州所作次其韻)」, 정포(鄭誧)[1309~1345]의 「황산가(黃山歌)」 등의 한시가 있다.

조선 시대에는 성현(成俔)[1439∼1504]의 「도삼차수(渡三叉水)」 2수, 정사룡(鄭士龍)[1491∼1570]의 「황산강(黃山江)」, 홍성민(洪聖民)[1536∼1594]의 「황산강주중즉사(黃山江舟中卽事)」, 이덕형(李德馨)[1561~1613]의 「황산강유감(黃山江有感)」, 수색(水色) 허적(許示+啇)[1563∼1641]의 「주행소황산강(舟行泝黃山江)」 등 7수, 남구만(南九萬)[1629∼1711]의 「양산차운정포황산가(梁山次韻鄭誧黃山歌)」, 이헌경(李獻慶)[1719∼1791]의 「도락동강(渡洛東江)」, 황현(黃玹)[1855~1910]의 「도락동강(渡洛東江)」, 김정로(金貞魯)의 「삼차유수(三叉流水)」, 그리고 양산 명승고적 향토지에 실린 작자 미상의 시 2수 등이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낙동강을 노래한 한시는 대부분 낙동강을 건너며 느낀 감회나 낙동강에 배를 띄워 흥취를 즐긴 감흥 등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낙동강을 직접 노래하기 보다는 강변의 명소를 읊으면서 낙동강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특히 임경대(臨鏡臺), 팔경대(八景臺), 칠점산(七點山), 명호(鳴湖) 등이 주요 배경이 되었다.

특히 임경대를 노래한 한시는 최치원(崔致遠)[857~?]의 「황산강림경대(黃山江臨鏡臺)」를 비롯하여 고려 시대 김극기(金克己), 그리고 조선 시대의 정사룡(鄭士龍)[1491∼1570], 허적, 권만(權萬)[1688∼1749], 정범조(丁範祖), 남경희(南景羲), 이만도(李晩燾) 등이 노래한 20여 수의 시가 남아 있다.

강변에 임경대라는 정자가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낙동강을 노래한 한시는 옛 낙동강의 강물이 거울처럼 맑았음을 노래한 시들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한시 몇 수를 감상해 보자.

1. 이규보, 「박 시어와 함께 양주로 떠나려 하면서 황산강에 배를 띄우고 입으로 부르다[同朴侍御將向梁州舟黃山江口占]」

벽강징정부생파(碧江澄淨不生波)[푸른 강 맑고 맑아 물결도 잔잔한데]

경양난주경리과(輕漾蘭舟鏡裏過)[가벼운 목란 배는 거울 속을 지나네]

가견홍군군필회(訶遣紅裠君必悔)[미인을 꾸짖어 보낸 일 그대 반드시 후회하리니]

차간의청일성가(此間宜聽一聲歌)[여기서 노래나 한 곡 들어야 좋겠군]

고려 시대 이규보는 황산강에 목란 배를 띄워 밀양에서 양산으로 향하는데, 푸른 강물이 너무 맑고 물결도 매우 잔잔하여 마치 거울 속을 지나는 것 같다고 읊었다. 당시 낙동강의 강물이 거울처럼 맑았음을 노래하고 있다.

2. 정사룡, 「황산강」

증독김시식차강(曾讀金詩識此江)[일찍이 김모의 시를 읽어 보고 황산강을 알았더니]

전풍선석일용당(顚風船石日舂撞)[배를 대는 곳에 미친 듯한 바람이 날마다 찧어대네]

아금력험여재각(我今歷險如齋閣)[내가 지금 험한 고비를 재계하는 누각처럼 여기니]

팔구심흉미긍강(八九心胸未肯降)[마음의 8·9할은 승복하지 못하겠네]

정사룡은 김모의 시를 읽어 보고 황산강[낙동강]이 거울처럼 맑고 잔잔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실제 와보니 미친 듯한 바람이 배를 정박하는 곳에 불어대니 맑은 거울에 임한다는 임경의 이미지는 찾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김모의 시에서 말한 내용의 8·9할은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정사룡은 오늘 비록 바람이 몰아치는 황산강에 배를 정박하고 있지만 고요히 재계하는 누각처럼 생각하고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겠다고 노래하고 있다.

3. 홍성민, 「황산강주중즉사」

해상청산경리요(海上靑山鏡裏搖)[바닷가 푸른 산은 거울 속에 흔들리고]

근봉여압원봉교(近峯如狎遠峯驕)[가까운 산은 친압한 듯 먼 산은 교만한 듯]

욕장칠자논호종(欲將七字論豪縱)[일곱 글자로 호방함을 논하려하나]

각파곤령염료효(却怕坤靈厭鬧囂)[대지의 신령이 시끄럽다고 싫어할까 두렵네]

이는 홍성민이 황산강에서 배를 타고 가다 즉흥적으로 읊은 한시이다. 배 밑의 물은 거울처럼 맑고 그 속에 푸른 산이 거꾸로 비쳐 흔들리고 있다. 배 위의 지상에는 거울 속에 비친 산이 좌우로 빽빽이 늘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산은 나와 친한 듯 다정히 다가오고 멀리 있는 산은 교만한 듯 뽐내고 있다. 28자의 글자로 시를 창작하여 호방함을 논하려고 하였지만 대지의 신령이 시끄럽다고 호통칠까 두려워서 그러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4. 이덕형, 「황산강에서 느끼는 바가 있다[黃山江有感]」

초만명구변전장(草滿名區變戰場)[풀 우거진 명승지가 전쟁터로 변하였으니]

중래요학독함상(重來遼鶴獨含傷)[다시 온 요학은 홀로 마음 아파하네]

강산불관인간한(江山不管人間恨)[강산은 인간의 한을 상관하지 아니하고]

옥경아미반석양(玉鏡蛾眉伴夕陽)[옥거울 강과 눈썹 같은 산이 석양을 짝하네]

이는 이덕형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뒤에 황산강을 지나며 아픈 마음을 술회한 시이다. 일본군 전선(戰船)은 부산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인근의 백성을 약탈하였다. 임진왜란을 진두지휘(陣頭指揮)하였던 이덕형은 전쟁 당시에도 이곳을 지났고, 또 전쟁이 끝난 뒤에도 다시 오게 되니, 마치 요학(遼鶴)[요동 사람 정령위(丁令威)가 선술(仙術)을 배워 학이 되어 요동 성문에 온 것을 이름]처럼 되어 마음이 한없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서 전 국토가 황폐해졌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자연이라 옥거울 같은 강과 미인 눈썹 같은 푸른 산이 변함이 없이 자기를 반겨 주고 있다고 노래하고 있다.

[낙동강을 노래한 산문]
유호인(兪好仁)[1445∼1494]의 「낙강범주시발(洛江泛舟詩跋)」이 낙동강을 노래한 유일한 산문이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자 유호인이 의성 현령(義城縣令)이 되어 인근 상주 목사(尙州牧使)로 온 벗 강구손(姜龜孫)과 함께 ‘낙동강에 배 띄어 놓고 시를 읊는다’는 내용이다. 길지 않은 산문이므로 전문을 소개한다.

나는 1487년(성종 18) 봄에 의성 현령이 되어 오고, 강구손은 1488년(성종 19) 봄에 잇달아 상주 목사가 되어 얼마 멀지 않은 사이에 낙동강 하나를 서로 바라고 있었으나, 각각 공무에 얽매어 한갓 편지로써 서로 물어온 적이 수년이었는데, 1490년(성종 21) 여름에 우연히 공무로 경주(慶州)에 모이게 되어 나란히 말을 타고 함께 남산(南山)의 신성(新城)까지 와서 작별하였고, 또 금년 여름에 안동(安東)에서 시험을 치는 제생(諸生)들이 일을 끝마치는 날에 강구손이 이를 강요하여 내가 관할하는 춘산면 빙산(氷山)에서 노닐게 되어 반벽(半壁)의 등불 아래 한 동이 술을 나누고 파하였으며, 그 후 한 달이 채 못 되어서 함께 홍귀달(洪貴達) 상공(相公)을 상주 함창(咸昌)으로 방문하였는데, 나는 강구손에게 납치를 당하여 물 구경하는 놀이를 이루게 되었으니, 그것은 아마도 지난날 춘산의 빙산의 놀이를 보답하자는 뜻이었으리라.

아, 경상도 내의 친우 둘이가 별처럼 흩어져 천리에 있으니, 나가고 들앉고 떨어지고 합하는 것이 너무도 무상함은 비록 인사에서 나온 관계겠지만, 나는 역시 그 사이에도 운수가 끼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까운 곳에 있어도 아침저녁으로 왕래하기는 쉽지 않다지만, 수년을 두고 겨우 한두 차례 회합을 얻었는데 오히려 천행으로 생각하니, 하물며 저 하늘가 땅 모퉁이 밖에 있어서 이겠다. 그렇다면 오늘의 놀이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이날 밤에 강 안개는 몽롱하고 갈매기와 새들은 떼 지어 나는데, 한 잔 술을 서로 나누니 온갖 형상이 더욱 색다르게 보인다. 강구손이 나에게 보답하는 것은 반드시 소란한 거문고나 피리에 있지 않을 것이니, 나 역시 지난날 먼저 베풀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무릇 아름다운 산수는 천지의 사이에 하나의 무정한 물건이요, 또 금·옥에 비할 바 아닌데, 우리들이 무슨 관계라서 유독 가져다 제 것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탐낸다 하지 않고, 조물(造物)도 역시 도적이라 하지 않으며, 난초나 혜초처럼 귀하게 보아서 서로 주고받으며, 다른 사람은 따라오지 못하는 바이니 비록 우리 두 사람의 청전(靑氈)이라 해도 가하다. 강구손은 내 말을 어떻게 여기는가. 우리와 함께 노닌 자는 상주 통판(尙州通判) 신현(申礥), 상주 교수(尙州敎授) 이인우(李仁祐), 전 정랑(正郞) 정륜(鄭倫), 생원 박신형(朴信亨)이었다. 1491년(성종 22) 6월 초 10일 고령(高靈) 유호인이 쓰다[僕 丁未春 來守聞韶 用休 己酉春 繼爲商牧. 三飧莽蒼之間 隔洛相望 而各拘簿領 徒以書相問者數年矣. 庚戌夏 偶以公事 會于東都 連鑣馬上 竟至新城而別. 今年夏 又於花山 同試諸生 竣事之日 強要用休. ▒弊縣之氷山 靑燈半壁 一尊而罷. 未閱月 偕訪兼善相公於咸寧 僕爲用休氏所拉 得成觀水之遊 意者其必酬向日之氷山也. 噫! 海內親友 星散千里 出處離合之無常. 雖皆出於人事 予則以謂有數存乎其間. 雖在近者 未易朝夕往來. 憧憧隔數年 僅得一二之會 猶夫擬諸天幸. 況在天涯地角之外乎! 然則今日之遊似非偶然. 是夜 江雨涳濛 鴻烏群飛 一杯相屬 萬像呈奇. 用休之酬我者 必不在啁啾絲管之中 僕亦竊以向之先施 爲自幸焉. 夫佳山勝水 天地之間一無情之物 且非金玉之比 有何□於吾輩 獨取之爲己有 人不爲貪 造物亦不以爲盜, 以至比貴於蘭蕙, 持以相與, 而他人所不及焉. 則雖曰吾二人之靑氈, 可也. 用休以吾言爲何如 同吾遊者 通判申礥彥玉 敎授李仁祐公輔 前正郞鄭倫仲經 生員朴信亨士隆 是 弘治辛亥六月初十日 靈川兪某 書].

[의의와 평가]
현재 낙동강을 노래한 고전 문학은 한시 22수, 낙동강변의 임경대를 노래한 한시 20여 수로 대략 40여 수의 한시와 1편의 산문이 남아 있다. 이들 고전 문학은 신라 시대의 최치원부터 개항기의 황현에 이르기까지 고려·조선의 문사들이 앞을 다투어 낙동강을 노래했음을 보여 준다. 영남 제일의 명강(名江)인 낙동강최치원이 굽어보고, 정포가 주시했으며, 정현덕이 그리워한 원초적 기쁨이 흐르는 곳으로, 이를 노래한 고전 문학들은 옛 낙동강의 맑고 깨끗한 모습을 잘 묘사해 주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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