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18번 완당

대표시청각
button
관련항목 페이징
  • URL Copy
  • twitter
  • facebook
항목 ID GC04210180
한자 元祖-番-
영어의미역 Original Wandang Dumplings Restaurant No. 18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지명/시설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238번길 6[부용동 1가 69-1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호

    [상세정보]

    성격 음식점
    면적 약 462.8㎡[1·2층]
    전화 051-256-3391
    홈페이지 원조 18번 완당(http://www.완당.com)
    개관|개장 시기/일시 1947년연표보기 - 포장마차로 개업
    이전 시기/일시 1956년 -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2가에서 서구 부용동 1가로 이전
    이전 시기/일시 1972년 - 부산광역시 서구 부용동 1가에서 부용동 1가 69-12로 이전
    개칭 시기/일시 1956년 - 18번 완당으로 상호 결정
    개칭 시기/일시 1962년[추정] - 18번 완당에서 원조 18번 완당으로 개칭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6년 - 향토 음식점 선정[부산지방국세청]
    최초 설립지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2가
    주소 변경 이력 18번 완당 - 부산광역시 서구 부용동 1가 중부산등기소 뒤편
    주소 변경 이력 원조 18번 완당 -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38번길 6[부용동 1가 69-12]
    현 소재지 원조 18번 완당 -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38번길 6[부용동 1가 69-12]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부용동 1가에 있는 완당 전문 음식점.

[개설]
완당은 중국에서 일본을 거쳐 부산에 정착한 음식으로, 만두피와 소를 엄지손가락 크기로 잘게 빚어 맑은 탕국으로 끓여낸 일종의 변형된 만둣국이다. 부산 지역과 김해, 창원 지역에는 ‘18번 완당’이라는 상호로 완당집 영업을 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원조 18번 완당은 어디에도 분점이 없음을 강조하며, 1대 이은줄[1981년 작고], 2대 이용웅[현 대표, 72세], 3대 이상준[36세]으로 이어지며 영업을 하고 있는 부산 완당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음식점이다.

[건립 경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난 이은줄이 13세 때[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완탕[완당의 일본 이름]’ 식당에서 일하며, 밤에는 공업 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다. 1945년에 해방이 되자 조국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귀국선을 탔고, 혼란스럽던 해방 정국 속에서 서너 가지 사업을 벌였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1947년에 일본에서 배운 완탕 요리법으로 중구 보수동 2가의 ‘검정다리[흑교, 현재는 복개로 사라짐]’ 부근에서 포장마차를 개업하였고, 이것이 부산 완당의 시작이었다. 1956년 서구 부용동 1가의 당시 전차역 인근에 18번 완당으로 정식 개업을 하였다. 당시 가장 잘하는 노래를 18번이라고 하듯이 완당을 가장 맛있게 만들자는 뜻에서 ‘18번 완당’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변천]
1962년경 ‘원조 18번 완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72년에 서구 부용동 1가 69-12번지의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1981년에 창업주가 작고하여 2대 대표가 이어받았다. 1996년에 향토 음식점으로 지정[부산지방국세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성]
원조 18번 완당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카운터가 있고, 홀[테이블]과 마루식 좌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홀의 테이블에서는 만두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도 있다. 1·2층을 포함해 손님용 테이블이 36개[150명 수용 가능] 있다. 조리 시설은 약 66.1㎡로, 옆 건물을 매입하여 재료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메뉴로는 완당, 완당면, 교자 완당, 발국수[메밀국수], 돌냄비 우동, 냄비 우동, 유부 우동, 튀김 우동, 유부 초밥, 김밥 등이 있다.

[현황]
연면적은 약 462.8㎡[1·2층 포함]이며, 영업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이다. 매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월요일은 휴무이다. 체인점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으나 체인점은 맛을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하여,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수제 완당 제조법을 고수하고 있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손님이 몰려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2000년 이후에는 완당 피 기계를 도입하였다. 사람이 손으로 반죽하고 빚어서 3㎜의 밀가루 피를 만들기에는 뛰어난 요리사 1명~2명의 능력의 한계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육수 제조와 완당 삶기 등은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따끈한 완당으로 속을 채운 후에 또 다른 별미인 시원한 발국수를 맛보는 것도 좋다. 직접 뽑은 메밀국수를 대나무 껍질로 만든 그릇에 얹은 것을 발국수라고 부른다. 처음 문을 열 당시에 빈곤층들은 밥 대신 메밀로 죽을 쑤어 먹곤 했는데, 손님들이 메밀죽처럼 메밀국수를 ‘가난한 음식’으로 여길까 봐 대나무 발의 이름을 따서 ‘발국수’라 이름 붙인 것이 유래이다.

1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집필항목 검색 닫기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참고문헌 검색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