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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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15966
한자 天主敎釜山敎區
영어공식명칭 Diocese of Busan
이칭/별칭 부산교구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로427번길 39[남천동 70-4]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 건

    [상세정보]

    성격 종교 단체
    설립자 최재선 요한 주교
    전화 051-629-6700
    홈페이지 천주교 부산교구(http://www.catholicbusan.or.kr)
    설립 시기/일시 1957년 1월 21일연표보기 - 설립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로 427번길 39[남천동 70-4]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동에 있는 천주교 소속 교구.

[개설]
부산 지역의 선교 활동은 광복 이전에는 크게 활발하지 못하였다. 당시 부산 지역의 본당은 부산진본당과 청학본당 두 곳뿐이었다. 민족의 비극인 6·25 전쟁으로 남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교회가 큰 피해를 입었으나, 부산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많은 피란민들로 교세가 급격하게 확장되어 피란 교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외국 선박의 기착점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외국 교회의 지원 활동이 부산 지역을 거쳐 퍼져나갔다. 이런 교세 확장으로 1954년에 천주교 부산교구 설립을 위한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었다.

당시 대구교구장 최덕홍(崔德弘)[1902∼1954] 주교는 1954년 6월 18일 부산과 경상남도 지역을 감목대리구로 설정하고, 초대 감목 대리로 서정길[요한] 신부를 임명하여 부산진본당 주임을 겸임하게 하였다. 서정길 신부가 부임하던 해 7월 25일에 경남교구 설치기성회가 창립되었다. 그런데 그해 12월 14일 대구교구 교구장 최덕홍 주교의 사망으로 1955년 7월 13일 서정길 감목 대리가 그 후임에 임명되었다. 이에 따라 9월 1일자로 정재석(鄭在石) 신부가 2대 감목 대리로 임명됨과 동시에 경남교구 설치기성회 총재가 되었다.

1955년 12월 31일에 주한 교황 대사 퀸란(Quinlan) 주교에 의해 경남교구 설립 신청서가 교황청에 제출되었다. 1956년 3월 26에 이 신청서가 교황청에 접수됨으로써 교구 설립을 위한 정식 절차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1957년 1월 21일 교황청의 주교성성(主敎聖省)[추기경 회의를 보조하는 교황청 성성 안의 한 기구]을 통하여 부산대목구가 인가되었고, 2월 3일자로 초대 부산 감목 대리로 최재선(崔再善)[1912~2008] 신부가 선임되었다.

당시 부산 지역은 사회 부패 문제가 심각하였다. 6·25 전쟁이 끝난 이후 피란민에 의해 세워진 판잣집 철거, 하수도와 도로 정비, 밀수 증가 등의 문제와 함께 사회적 무질서와 부패가 만연하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천주교 부산교구가 설립됨으로써 복음 정신인 사랑과 봉사에 바탕을 둔 천주교회의 활동이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 천주교 부산교구에서는 설립 초기부터 해외 원조를 통한 자선 사업, 사회 복지 사업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다른 교구보다 더 빠르게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변천]
1. 초대 교구장 최재선 주교 시대[1957~1972년]

초대 천주교 부산교구장인 최재선 주교의 문장의 ‘기도하고 일어라’는 표식에서 보듯이, 성모의 별이 인도에 따라 신설 교구의 개척을 기도하면서 일구어 나가려고 했다. 교구 설정 이후 교구장은 감목 대리관이 있던 부산진본당이 아닌 중앙본당 사제관 2층 단칸방에서 생활하였다. 최재선 주교는 교구청 건립을 위해 미국의 메리놀회 총장에게 메리놀 진료소 부지를 천주교 부산교구에 양도해 주도록 부탁하였다. 이에 메리놀회 본부는 부지를 천주교 부산교구에 증여하였고, 1964년 5월 5일에 이곳에 교구청[대청동 4가 81번지]을 건립하였다. 1962년 3월 10일 13개의 대목구가 정식 교구로 승격되고 동시에 서울, 대구, 광주가 대주교관구로 나뉘어져 교계 제도가 확립되었다. 천주교 부산교구는 대구관구에 속하게 되었다.

교구장 최재선 주교가 최우선으로 한 신심 함양은 묵주 기도를 통한 성모 신심 함양이었다. 그는 교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교구 수호성인으로 묵주의 기도 성모를 정하였을 정도로 묵주 기도 봉헌을 강조하였다. 1958년에 10만 번 운동을 전개하였고, 1960년 5월에는 성모 성월을 맞이하여 전국에서 3000만 번 운동이 전개되었을 때 천주교 부산교구에서는 100만 번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60년 10월에는 외교인을 위한 370만 번 운동을 전개하였다. 1962에는 교황 요한 23세에게 특별 전대사를 할 수 있도록 6만 개의 묵주에 강복을 청하였다. 최재선 주교는 이 묵주 6만 개를 천주교 부산교구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는 한편 계속 성모 신심 함양과 교구 발전을 위해 기도하도록 당부하였다.

1965년 말에 이르러 천주교 부산교구의 신자 수가 9만 7503명이 되고, 본당 수도 51개로 확장되었다. 교세의 확장과 본당의 증가로 인해 교구장의 사목에 어려움이 생겼다. 이에 교황청의 포교성성(布敎聖省)에서는 1966년 2월 15일자로 교황 바오로 6세의 마산교구 설립 칙서를 발표하였다. 초대 주교로 김수환(金壽煥)[스테파노, 1922~2009] 주교의 서임을 세계에 공포하였다. 마산교구 분할 당시 부산과 마산 쪽의 교세를 보면 부산은 31개 본당에 교우 7만 4,000명[인구 270만 8,746명 대비 2.7%]이었고, 마산은 20개 본당에 신자 2만 8,069명[인구 207만 7,368명 대비, 1.3%]이었다. 1973년에는 거제도와 창녕 그리고 김해와 밀양의 일부가 추가로 마산교구에 양도되었다.

2. 2대 교구장 시대[1975~1999년]

1972년 3월에 천주교 부산교구의 관리 주교로 임명된 이갑수(李甲秀)[1924~2004] 주교가 공석 중인 교구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교구의 안정화에 기여하였다. 이에 교황 바오로 6세가 1975년 6월 28일자로 이갑수 주교를 제2대 부산교구장으로 임명하였고, 교구에서는 7월 17일 중앙성당에서 주교의 착좌식을 가졌다.

이갑수 주교는 교구 청사의 신축을 결정하여 1975년 3월 16일에 기공식을 가졌고, 4개월의 공사 끝에 7월 31일 신축 청사의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이를 통해 교구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1982년 12월 9일에 가톨릭 센터의 기공식을 거행했고, 16개월의 공사 끝에 1982년 3월 말에 완공하여 4월 30일 축성식을 가졌다. 이로써 가톨릭 센터는 교회 본연의 사명인 복음 선포 및 지역 사회 문화 발전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천주교 부산교구에서는 교구 설정 25주년을 맞이하는 1982년에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교구 공의회는 1982년 4월 5일부터 1984년 10월 3일까지 네 차례의 총회와 65회의 분과 회의를 가진 후 10개의 의안을 작성, 통과시키고 폐회되었다. 공의회가 끝난 후 이갑수 주교는 1985년 1월 27일 공의회의 의안들을 자기 선교와 이웃 선교를 위한 교구의 반성과 쇄신 지침으로 받아들이고 교구 공의회 문서로 인준하였다.

1984년에 한국 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행사와 103위 시성식이 교황의 한국 방문에 맞춰 거행되었다. 부산에서는 5월 5일 예전의 수영 비행장 터에서 교황이 참석한 가운데 신앙 대회를 개최하였다. ‘근로자, 농민, 어민과의 만남’이란 명칭으로 이루어진 이날 행사에는 천주교 부산교구 신자, 타 교구 신자, 근로자, 농어민, 장애인 등 약 30만 명의 군중이 참여하였다.

이갑수 주교는 교구 설정 30주년이 지난 후 1988년 연두 사목 교서에서 ‘형제적 일치로 지역 복음화’를 강조하였다. 지역 사회의 복음화를 위한 첫 단계로 부산가톨릭대학교 건립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1988년 6월 17일에 부산가톨릭대학교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27일에 문교부에 대학 설립 승인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12월 20일에 문교부로부터 학교 법인 성모학원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 설립 승인을 취득하였다.

1990년 9월 23일 부산가톨릭대학 건축 기공식을 가졌고, 12월 24일에 교육부로부터 부산가톨릭대학 설립 인가를 취득하였다. 4년여의 공사 끝에 1993년 10월 7일 이갑수 주교의 주례로 교황 대사 등 2,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완공 축복식을 가졌다. 1991년 3월 2일 신입생 18명, 편입생 7명으로 개교하였다. 1998년 2월 7일 부산가톨릭대학 출신 14명이 처음으로 사제로 서품되었다.

1988년 2월 6일 교구 사무처 홍보실을 신설하고 지역 사회의 복음화와 현안 문제, 그리고 가톨릭 문화를 전할 수 있는 계간지 『가톨릭 사회』를 창간하였다. 1990년 3월 5일에는 중고등부 주일 학교 학생들을 위해 『푸른 나무』를 창간하였다. 1998년 11월 29일에는 홍보국 산하 인터넷 성당(www.pcc.or.kr)을 개설하여, 인터넷으로 복음 전파를 가능하게 하였다.

1990년 5월 4일에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가톨릭노동상담소를 개설하고 양요섭 신부를 소장으로 임명하였다. 성당이나 수녀원 독자적으로 무료 급식소를 개설하여 지역 사회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1992년 2월 1일에는 교구 내 사회 사목 전체를 주관할 수 있는 사회사목국을 신설하고 양요섭 신부를 국장으로 임명하였다. 1995년 10월 28일 교구 사회 복지 회관·초원의 집을 준공하여 축복하였다. 1997년 7월 29일 부산시로부터 천주교 부산교구 사회복지회를 허가 받아 사회 복지 시설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1997년 중구 대청동의 교구청을 수영구 남천동으로 이전하여 활발한 사목 활동 준비를 하였다. 10월 12일 사직 운동장 야구장에서 교구 설정 40주년 신앙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교구장 이갑수 주교와 교황 대사 요한 바티스타 모란디니 대주교, 최재선 주교를 비롯해 1만 2000명의 신자들이 참석하였다.

3. 제3대 교구장 시대[1998~2007년]

1998년 11월 14일 군종 교구장이었던 정명조(鄭明祚)[1935~2007] 주교가 부산교구 부교장으로 임명되었다. 1999년 8월 28일에는 부산교구 부교장 정명조 주교가 주교좌 남천성당에서 거행된 착좌식을 통하여 교구장직을 승계하였다. 정명조 주교는 1999년 11월 16일 부산가톨릭대학과 지산대학의 통합을 승인하고 초대 총장으로 정영한 신부를 임명하였다. 2000년 대희년에 ‘새로운 복음화의 해’라는 제목으로 교구장 첫 사목 교서를 발표하였다. 그 이후의 사목 교서에서는 ‘복음화’를 강조하다가, 2003년과 2004년은 가정 공동체의 복음화를 강조하였다. 2005년부터는 미래 사목의 대안이라 불리는 소공동체 운동을 통한 복음화를 강조하였다.

2000년 5월 3일 가톨릭 센터 9층에서 부산평화방송 개국 축복식을 주관하였다. 2000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의 기념 성당에서 일본의 히로시마교구 및 필리핀의 인판타교구와 자매결연을 하였다. 2003년 7월 20일 대만의 까오숭교구와 자매결연을 하였다. 2003년 9월 7일에는 부산평화방송 울산중계소의 허가를취득하였다. 2003년 8월 29일에는 부산성모병원 기공식을 주관하였고, 착공한 지 약 2년 10개월 만인 2006년 6월 12일 완공하여 진료를 개시하였다.

4. 제4대 교구장 시대[2007~현재]

2007년 12월 28일 황철수(黃哲洙)[1953~] 주교가 부산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 황철수 교구장은 그동안 한국 교회와 천주교 부산교구가 신자 수의 증가, 사회 시설의 확대 등 양적 팽창만을 중시한 것에 대해 성찰하였다. 그러는 동안 신자들의 신앙이 해이해졌기에 다시금 본당을 중심으로 신자들의 내적인 복음화를 중점 사목 지침으로 삼았다. 그래서 교구 사목 지침 5개년 계획으로 본당과 가정의 복음화를 천명하였다.

2010년 늘어나는 신자와 사목자들에 비해 성당 수는 많이 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10개년 계획으로 매년 3개 성당의 신설하기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울산 신자들을 위해 2010년 울산대리구제를 실시하였다. 2010년 7월 9일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교 학장이던 손삼석[요셉] 신부를 천주교 부산교구 보좌 주교로 서품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해당 지역의 성당을 관할하며, 교육 사업, 의료 사업, 문화 선교 사업, 사회 복지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교육 사업으로는 유치원 11개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5개교, 신학원 1개교, 대학교 1개교를 운영하고 있다. 의료 사업으로는 메리놀병원과 부산성모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 선교 사업으로는 PBC 평화방송 라디오와 가톨릭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 복지 사업으로는 종합 복지 시설 25곳, 아동·청소년·노인 시설 33곳, 장애인·여성·나환자·행려자·다문화 가정 시설 31곳을 운영하고 있다.

[현황]
천주교 부산교구의 부서는 사무처, 선교사목국, 청소년사목국, 사회사목국, 성소국, 관리국, 전산홍보국, 가정사목국의 1처 7국으로 조직되어 있다. 2013년 12월 31일 기준 관할 지역의 면적은 3,267㎢이며, 신자는 총 43만 3,402명[울산, 김해, 양산, 밀양 포함]이다. 성직자는 주교 2명, 한국인 신부 354명, 외국인 신부 5명 등이다. 관할 성당은 부산 78개[준본당 1개 포함], 울산대리구 26개, 김해 9개, 밀양 3개, 양산 6개이다.

    [참고문헌]

    • 천주교 부산교구(http://www.catholicbus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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