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김녕 김씨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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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17353
한자 社稷洞金寧金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Gimnyeong Gim clan in Sajik-d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여고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세거지 사직동 김녕 김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여고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에 있었던 김녕 김씨 세거지.

[명칭 유래]
사직동의 지명은 이곳에 있었던 사직단에서 유래하였다. 사직단의 사(社)는 토지신을 말하고, 직(稷)은 곡물 신으로 임금을 비롯한 지방 수령이 토지신과 곡물 신에게 제사를 드려 나라의 풍요와 지방의 안녕을 비는 곳이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1640년(인조 18) 처음 사직단을 쌓았으며 이후 1709년(숙종 35) 부사 권이진(權以鎭)이 이곳으로 이설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사직단은 도시화로 현재는 사라졌으며, 동래구 사직 3동 신동아 맨션과 대건성당 부근에 터만 남겨져 있다.

[형성 및 변천]
김충립(金忠立)과 김충주(金忠柱)가 할아버지인 9세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의 사육신 사건으로 벌을 받아 관노(官奴)가 되었는데, 동생 김충주는 탈출하여 안산에 숨어 살게 되었고 형 김충립은 관노 생활을 계속하다가 아들 김충지(金衷之)를 낳았다. 김충지가 김영시(金永時)를 낳고, 김영시의 큰아들 김제학(金提鶴)의 아들인 김춘(金春)이 동래로 내려왔다. 다시 김춘의 큰아들 김이람(金以藍)의 후손이 보수동 쪽에 정착하였으며, 17세기 후반 작은 아들 김하빈(金夏彬)이 동래 사직동 여고 마을로 이거하였다.

[자연 환경]
사직동의 서북쪽으로 금정봉[397m] 등 금정산지 줄기가 이어지며, 이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동쪽으로 흘러 온천천과 합류한다. 주거지를 지나는 하천은 대부분 복개되어 있으며 동쪽의 온천천은 생태 하천으로 조성되어 있다.

[현황]
김녕 김씨 여고 가문은 금정구의 국회 의원인 김세연의 집안이다. 현재 여고 마을에서는 김녕 김씨 세거지를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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