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동 봉림 마을 남평 문씨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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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17405
한자 駕洛洞鳳林-南平文氏世居地
영어의미역 Garak-dong Nampyeong Mun Ancestral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봉림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20여 가구
    세거지 가락동 봉림 마을 남평 문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봉림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개설]
남평 문씨(南平文氏) 대동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신해보[1732년 발간]에 의하면, 남평 문씨 시조인 문다성(文多省)은 통일 신라 말에 태어나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개국 공신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다성의 아들 문탁(文倬)이 문하시랑 찬성사 상주국 태사 태부(門下侍郞贊成事上柱國太師太傅)였으며, 이후 문천강(文天降)·문주백(文周伯)·문승조(文承祖)·문성화(文聖和)·문인걸(文仁傑)·문지원(文智遠)·문정(文挺)·문중달(文仲達)·문극유(文克裕)·문효제(文孝悌)·문장창(文章昶)·문정(文正) 등 12세를 기록하였으나 고증하기 어려워 고려 헌종(獻宗) 때 상주국 평장사(上柱國平章事)를 지낸 경절공(敬節公) 문익(文翼)을 중시조(中始祖) 1세로 하였다.

2세 문공유(文公裕)가 북병마사(北兵馬使)·형부 상서·예부 상서를 지냈고, 3세 문극겸(文克謙)은 고려 의종(毅宗)·명종(明宗)에 걸친 중신으로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와 감수국사(監修國史)·태사(太師)·태부(太傅)를 지냈다. 4세 문후식(文侯軾)은 태부경 동북면 지병마사(太夫卿東北面知兵馬使)를 지냈고, 5세 문정은 정순대부(正順大夫) 집현전 제학을 지냈으며, 6세 문중연(文仲連)은 벽상 공신 상주국 문하시랑(壁上功臣上柱國門下侍郞)을 지냈다. 8세 문득준(文得俊)은 탐라(耽羅) 해적을 토평하고 봉익대부 판도판서(奉翊大夫版圖判書)와 예부 상서를 지냈다.

9세 문극검(文克儉)은 사의대부(司儀大夫) 개성 부윤을 역임하였으며, 10세 문윤각(文允恪)은 충혜왕 때 봉익대부(奉翊大夫) 삼사 우사 문한 학사(三司右使文翰學士)를 지냈고, 11세 문숙선(文叔宣)은 공민왕 때 한림원 학사와 좌정언(左正言), 지제교 사간원 헌납(知製敎司諫院獻納)을 지냈다. 문숙선의 아들 12세 문익점(文益漸)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직강 대학 박사(藝文館直講大學博士)에서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고 좌사의대부 우문관 제학(左司議大夫右文館提學)을 지내면서 중국에 갔다 돌아올 때 목화씨를 가져와 우리나라 최초로 목화를 번식하게 하였다. 그 외에도 대를 이어 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 집안이다.

[명칭 유래]
오봉산 아래 대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자리하여 봉황[대나무 열매만 먹는다고 전해지는 영물]이 깃드는 마을이라고 봉림(鳳林)으로 불렀다.

[형성 및 변천]
남평 문씨가 현재의 강서구 지역에 처음 들어온 것은 1650년대로, 남평 문씨 중시조인 상서 평장사 경절공 문익의 23세손 장사랑(將仕郞) 문열생(文烈生)이 김해로 이주하여 관간재(觀澗齋)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1770년경 27세손 문유남(文有南)이 가락동 봉림 마을에 정착하여 입향조가 되었다. 가락동 봉림 마을 남평 문씨 집안의 유명 인사는 가락고등공민학교를 세운 32세손 문위열(文渭悅)[1905~1970]과 독립운동가 문위동(文渭東) 등이다.

[자연 환경]
가락동 봉림 마을은 동쪽으로 서낙동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오봉산이 있는 산지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1600년대 마을 남쪽은 갈대가 무성한 저습지로 방아포[春浦]와 가마소[沼]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낙동강 제방과 녹산 수문이 축조되며 주변 저습지가 농토로 개간되어 현재와 같은 평지로 변하였다.

[현황]
남평 문씨가 한창 번성할 때는 죽림 마을·봉하 마을 등에서도 20~30여 가구 넘게 살았으나 2013년 현재는 20여 가구 정도 사는 것으로 보인다. 봉림 마을에는 남평 문씨 종중 재실인 경모재(景慕齋)문위열을 모신 아산재(我山齋), 최근 문동조가 세운 수암재가 있다. 앞들 방아포 나루터에는 문종주가 쌓은 탁사대(濯斯臺)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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