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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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19345
한자 南原梁氏
영어의미역 Namwon Yangsi|Namwon Ya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부산광역시
집필자 양흥숙

    [상세정보]

    성씨시조 양을나(良乙那)
    입향시조 양겸(梁謙)
    본관 남원 - 전라북도 남원
    입향지 동래부 가마골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세거|집성지 반송동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대룡 마을 -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 대룡 마을
    세거|집성지 오리 마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신리]마을
    세거|집성지 거제 2동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 2동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삼어 마을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
    세거|집성지 당리 마을 -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
    세거|집성지 주례동 -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
    세거|집성지 초읍동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세거|집성지 사암 마을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묘소|세장지 대룡 마을 -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
[정의]
양을나를 시조로 하고, 양겸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양씨(梁氏)는 제주, 남원,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것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양씨 가운데서도 남원 양씨가 80% 정도를 차지한다. 본관은 달라도 모두 제주 삼신인(三神人) 중 한 사람인 양을나(良乙那)를 같은 시조(始祖)로 삼는 인식이 예부터 내려왔다. 그러므로 1587년에 제주, 남원 두 본관의 합보(合譜)도 만들어졌다. 그 후에도 몇 차례의 합보 제작과 파보 제작이 있어 왔고, 1979년에는 유격공파(游擊公派), 대방군파(帶方君派), 용성군파(龍城君派), 병부공파(兵部公派), 성주공파(星主公派)가 모여 대동보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양씨대동보(梁氏大同譜)』를 만들었다. 30년이 지난 현재 새로운 대동보를 작업 중에 있다. 또한 종친회의 명칭도 남원양씨부산종친회가 아니라 양씨부산종친회라고 하면서 매년 정기 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방군파, 용성군파, 병부공파가 남원을 본관으로 한다. 남원 양씨 가운데에서도 병부공파가 8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수가 많다.

[연원]
시조 양을나의 후손 양탕(良宕)이 374년(내물왕 19) 신라에 입조하여 작록(爵祿)과 의관을 받은 후에 양(梁)으로 바꿔 불렀다. 남원이라는 본관을 갖게 된 것은 양우량(梁友諒)이 757년(경덕왕 16) 남원의 부백(府伯)으로 봉해진 이후이다.

부산의 남원 양씨는 병부공파가 많은데, 병부공파의 시조[남원 양씨 가운데서는 중조(中祖)에 해당]는 고려 태조의 증손서(曾孫壻)가 되는 양능양(梁能讓)이다. 부산에는 남원 양씨 평창공파(平昌公派), 사천공파, 수사공파 등 세파(世派)가 많이 있는데 대부분 13세 문양공(文襄公) 양성지(梁誠之)[1415~1482]의 후손들이다.

[입향 경위]
문양공 양성지의 고손인 양사원(梁思源)은 서울에서 처음으로 밀양으로 이주하였고, 그 아들인 18세 양겸(梁謙)이 ‘가화(家禍)’ 때문에 동래부의 부곡(釜谷)[가마골]으로 이주하였다. 양겸의 아들이 반송 삼절사(盤松三節祠)에 모셔져 있는 양조한(梁潮漢)[1555~1592], 양통한(梁通漢)[1558~1600] 형제이다. 그러므로 양겸에 의하여 남원 양씨가 동래에 입향한 것은 16세기 전반이 된다.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東萊郡誌)』의 ‘남원 양씨 편’에도 양겸을 맨 처음 적고, “문양공 양성지의 후손으로 진사(進士)이며 남원에서 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현황]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남원 양씨가 세거(世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동래군지』 중 남원 양씨 편에는 양겸, 양조한, 양통한, 양세당, 양윤택, 양도용, 양찬수, 양상홍, 양태환, 양석준, 양두혜, 양찬근, 양영호, 양운룡, 양명찬, 양준석, 양재복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모두 문양공 양성지의 후손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이들의 거주지는 대룡[노포동], 두구, 반송, 고대(古垈)[초읍동], 반여, 장전, 노포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남아 있는 세거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세거지로 알려져 있는 곳은 반송 삼절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해운대구 반송동[양통한의 후손들]과 반여동, 금정구 노포동 대룡 마을[양조한의 후손들], 사하구 하단동 당리 마을, 사상구 주례동, 연제구 거제동, 강서구 녹산동, 부산진구 초읍동[고대], 기장군 장안읍 오리 등이다.

반송동에 세거하는 문양공파의 평창공파가 만든 달력에는 양씨들이 알아 두어야 하는 제향, 향사들을 표기해 두었다. 음력 매월 1일의 삼절사 분향 및 삼절사 춘추 제향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관련한 충렬사 춘추 제향, 지역 유림이 참여하는 동래 향교 춘추 석전대제(釋奠大祭), 제주 삼성사(三姓祠)와 건승원(乾承原)의 춘추 대제, 남원 양씨 병부공파의 1세조부터 9세조까지의 묘가 있는 중광원(重光原) 묘제, 김포의 문양공 양성지의 묘제일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평창공파 산하의 반송 문중과 초읍 고대 문중, 노포동 대룡 문중의 묘제가 기록되어 있다.

1985년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양씨는 부산에 6,304가구에 2만 6,636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남원 양씨는 4,802가구에 2만 224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에 거주하는 양씨의 80%가 남원 양씨이고, 전국 남원 양씨 중의 10.9%가 부산에 거주하였다.

200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부산 지역에 양씨는 8,395 가구에 2만 7,728명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서 남원 양씨는 5,931가구에 1만 9,41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의 남원 양씨 중에서 8.9%가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 부산 지역에 거주하는 남원 양씨의 구별 분포[가구 수 및 인구수]는 다음의 표와 같다.



2007년 양씨부산종친회에서 간행한 『종사록(宗事錄)』에는 1975년 11월 2일 반송 삼절사에서 총립 총회를 개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이후에는 매년 11월, 12월 무렵에 정기 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양씨부산종친회는 숭선(崇先), 애족(愛族), 유후(裕後) 등의 종헌(宗憲)을 가지고 선조에 대한 추모와 공경, 혈족의 협력과 우애, 후손의 양육과 종문의 번영을 도모하고 있다.

[관련 유적]
남원 양씨와 관련된 부산 지역 유적으로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143번지에 있는 반송 삼절사[1986년 5월 29일 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호로 지정]를 비롯하여 진성단(盡誠壇)[금정구 노포동의 대룡 문중 선영], 양조한 순난비, 양통한 묘비[금정산 상계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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