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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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19350
한자 延日鄭氏
영어의미역 Yeonil Jeongsi|Yeonil Jeong Clan
이칭/별칭 영일 정씨,오천 정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부산광역시
집필자 김연지

    [상세정보]

    성씨시조 정종은(鄭宗殷)
    입향시조 정여적(鄭汝迪)
    본관 연일 - 경상북도 포항시 영일읍
    입향지 동평현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
[정의]
정종은을 시조로 하고, 정여적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정씨(鄭氏)의 본관은 문헌에 210본에서 247본 정도가 나와 있으나 오늘날 현존하는 본관을 30여 본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정씨의 원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신라의 6촌 중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인 지백호(智伯虎)이다. 오늘날 정씨의 각 본관별 시조들은 모두 지백호의 원손(遠孫)들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지만 그 혈연적 계보는 상고할 수 없다.

경주 정씨가 종통(宗統)이라는 데에는 별로 이론이 없으나 서산 정씨와 낭야 정씨(瑯琊鄭氏)가 중국계 귀화 성씨로서 동성 이족(同姓異族)이다. 정씨는 신라 9성 중의 하나로 역사적으로 명벌의 지위를 누려 왔으며, 특히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동래 정씨를 으뜸으로 연일 정씨(延日鄭氏), 청주 정씨, 온양 정씨, 진주 정씨, 봉화 정씨, 하동 정씨 등이 세력을 떨쳤다. 연일 정씨 외에도 동래에 입향한 정씨는 압해 정씨(押海丁氏)가 있다.

[연원]
연일 정씨의 시조 정종은(鄭宗殷)은 지백호의 후손으로 신라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 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내고 김유신(金庾信)[595~673]과 함께 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지만 사건에 연루되어 인동(仁同) 약목현(若木縣)으로 옮겨 호장(戶長)을 지낸 까닭으로 후손들이 본관을 연일로 했다. 또한 연일이 영일(迎日)로 바뀌었기 때문에 영일 정씨라고도 하고, 또 연일의 옛 이름이 오천(烏川)이었으므로 오천 정씨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의경(鄭宜卿) 이후 다시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의종 때의 중신으로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포은 정몽주(鄭夢周)[1337~1392]로 이어지는 지주사공파와 고려 때 감무(監務)를 지낸 정극유(鄭克儒)를 1세조로 하여 문정공 정사도(鄭思道)[1318~1379],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로 이어지는 감무공파로 나누어져 있다. 이 양파는 동원이면서도 중간 계보를 잃어버려 촌수를 따지지 못한다.

[입향 경위]
정몽주의 7세손인 정여적(鄭汝迪)이 조선 전기에 영천에서 부산으로 왔는데, 처음에는 동평현[부산진구 당감동]에 거주하였다.

[현황]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연일 정씨가 세거(世居) 성씨와 우거(寓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인구 조사에서 연일 정씨는 5,148가구에 1만 6825명[남자 8,622명, 여자 8,20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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