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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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19357
한자 昌原具氏
영어의미역 Changwon Gusi|Changwon Gu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부산광역시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성씨시조 구성길(具成吉)
    입향시조 구맹립(仇孟笠)
    본관 창원 - 경상남도 창원시
    입향지 덕포동 - 부산광역시 사상구 덕포동
    세거|집성지 석대동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석대동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덕포동 - 부산광역시 사상구 덕포동
[정의]
구성길을 시조로 하고, 구맹립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창원 구씨는 원래 구씨(仇氏)로 중국 송나라 대부 구목(仇牧)의 후손이라고 전해지나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문무왕 때 사찬(沙飡) 구진천(仇珍川), 용사(勇士) 구근(仇近) 등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일찍부터 대성으로 우리나라에서 활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창원 구씨 세보』에 의하면, 창원 구씨의 시조는 구성길(具成吉)로, 그는 고려 시대 945년(정종 즉위년) 권신 왕규(王規)의 전횡을 서경의 대광 왕식렴(王式廉)[?~949]과 함께 입경하여 토벌하고 공을 세웠다. 이것으로 의창군(義昌君)에 봉해졌다. 그런데 구성길 이후 4대와 공민왕 때 구설(仇雪)까지의 40여 년의 세계가 확실하지 않고 ‘임오보(壬午譜)’에 따라 구설을 1세조로, 그의 아들 구종길(具宗吉)을 중시조로 하고, 본관은 시조가 받은 의창이 창원으로 개칭되었기 때문에 이곳을 관향으로 하고 있다.

구씨(仇氏)가 구씨(具氏)로 개성하게 된 것은 조선 정조조 이후부터이다. 1791년(정조 15) 7월에 구시창(仇始昌)이 초관(哨官) 후보로 뽑혀 그 명단을 왕에게 올리자 정조가 이를 보고, “‘구성(仇姓)’이 오래된 성씨인 줄은 알지만 ‘구성(具姓)’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여 구성(具姓)을 사성(賜姓)하였다. 그리하여 1798년(정조 22)부터는 모든 공사 문서에 구씨(具氏)로 기재하였다.

창원 구씨 시조 구성길 이후 구설 이전까지는 세거지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구설 이후는 묘롱지(墓壟地)가 족보에 창원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창원이 세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창원 구씨 분파는 부사공파(府使公派)·진사공파(進士公派)·승지공파(承旨公派)·처사공파(處士公派) 등이다. 부산의 입향파는 부사공파이다. 구종길(具宗吉)의 맏아들 구복한(具復漢)이 강계도호부사를 역임하였기에 후손들은 창원 구씨 부사공파 파조로 하고 있다.

[입향 경위]
구유양(仇有良)의 둘째 아들인 구맹립(仇孟笠)이 임진왜란 이전에 동래군 사상면 덕포리에 이거하였다.

[현황]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창원 구씨가 세거(世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창원 구씨는 1,036가구에 3,376명[남 1,822명, 여 1,554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현재 창원 구씨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석대동, 사상구 덕포동 등지에서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창원 구씨 부사공파 동래 문중에서는 해운대구 석대동에 ‘구영취공 기공비’, ‘구주성공 정효비’, ‘창원 구씨 부사공파 제단비’ 등을 세워 창원 구씨 충효원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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