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두성

대표시청각
  • URL Copy
  • twitter
  • facebook
항목 ID GC04200374
한자 辛斗星
영어음역 Sin Dus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출생 시기/일시 1890년 2월 17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9일 - 좌천 장터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59년 9월 24일연표보기 - 신두성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4월 9일연표보기 - 좌천 장터 3·1 운동
    출생지 기장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104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기장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지도보기
    활동지 좌천 장터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 53 일대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신두성(辛斗星)[1890~1959]은 1890년 2월 17일에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에서 아버지 신영수(辛永壽)와 어머니는 방남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전국적인 3·1 운동 소식과 기장면 3·1 운동 소식을 접하면서 정관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계획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신두성을 포함한 오해환·오진환·김종복·김윤희(金允熙)·정지모(鄭智謨)·박일봉(朴一鳳) 등이 김종복의 사랑방에 모여 비밀리에 시위를 계획하고 거사일을 좌천 장날인 4월 9일로 정하였다.

1919년 4월 9일 이른 아침부터 좌천 장터에는 각처에서 많은 장꾼이 모였다. 신두성김윤희 등 5명과 함께 장시 중앙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이 불렀다. 이에 호응한 500~600명의 장꾼들도 일제히 만세를 불렀으며 경찰의 제지를 물리치고 장시를 누비면서 만세 시위를 하였다. 시위가 더욱 고조되고 시위 군중이 점점 늘어나자 일본 군경은 야만적인 무력 탄압과 발포로 시위대를 해산시켜 많은 시위 군중이 다치고 체포되었다. 시위 군중들은 붙잡힌 주동자를 석방시키기 위해 좌천주재소로 가서 일본 군경과 투석전을 벌였다. 그 결과 체포된 주동자들이 석방되었으며 시위 군중은 좌천에서 정관으로 돌아오는 내내 만세를 불렀다.

그 후 일제 경찰이 다시 주동자들을 체포할 때 신두성도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 받고 부산감옥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59년 9월 24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3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집필항목 검색 닫기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참고문헌 검색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