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의 해양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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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03066
한자 高麗時代-海洋交流
영어의미역 Marine Trade of the Goryeo Dynast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이종봉
[정의]
고려 시대 바다를 통한 부산 지역과 다른 나라와의 교류 양상.

[개설]
고려의 대외 교류는 후삼국 통일 전쟁 전후 시기에 시작되었다. 중국과는 919년(태조 2)부터 오월·후량·후진 등에 사신을 파견하였고, 송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불편한 시기도 있었지만 1173년(명종 3)까지 교류가 지속되었다. 일본과의 교류는 후삼국 통일 직후에 시작되었다. 11세기 초반 고려가 도이적(刀伊賊)[여진족 해적]에 나포된 일본인 259명을 구출하여 돌려보낸 것을 계기로 금주[현 김해]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다. 고려는 대일 교류를 위해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객관을 설치하였다.

[해양 교류를 통한 무역의 발달]
대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무역도 발달하였다. 고려의 대일 무역은 공무역과 사무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공무역은 사신[관인]에 의한 무역, 즉 진봉 무역(進奉貿易)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진봉 무역은 동아시아 특유의 질서 체제인 조공·책봉 방식이 아니라 고려적인 특성이 강한 팔관회적 질서에 의해 이루어졌다. 진봉 무역은 11세기 무렵 시작되어 대몽 항쟁기를 거쳐 1263년(원종 4)까지 지속되었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의하면, 고려 시대 부산 지역의 토성(土姓)은, 동래현에 ‘정·송·옥·정·조’, 기장현에 ‘이·김’, 동평현에 ‘이’가 존재하였다. 최근 고려 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중국 동전을 통해 부산 지역의 토착 세력은 나라 안에서의 상업 활동 외에 개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대외 무역에도 참여하였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특히 부산 지역은 낙동강의 수로와 조운선이 다니는 해로가 발달하여 일본과 직접 무역을 하거나 금주를 방문하는 일본 및 송나라 상인들과도 교역하였다. 바다를 매개로 한 부산의 해양 교류는 13세기 왜구가 등장하면서 일시적으로 쇠퇴하였다가 15세기 초반 조선이 부산포에 왜관을 설치하면서 다시 대외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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