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동 은진 송씨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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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4217380
한자 南山洞恩津宋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Eunjin Song Clan in Namsan-d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신암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진모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20가구
    세거지 남산동 은진 송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신암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에 있는 은진 송씨 세거지.

[개설]
은진 송씨(恩津宋氏)는 고려 판원사부군 송대원(宋大原)이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은진 고을에 세거지를 정한 뒤, 그의 증손자인 집단공 송명의(宋明誼)가 회덕 땅에 은거하면서 후손이 번창하였다. 송대원의 5세손 쌍청당 송유(宋愉)는 송계사(宋繼祀)·송계중(宋繼中) 형제를 두었는데, 그중 송계사의 아들인 송요년(宋遙年)·송순년(宋順年)이 각각 목사공파(牧使公派)와 정랑공파(正郞公派)로 갈리고, 송계중의 아들인 송미년(宋眉年)·송호년(宋胡年)이 각각 주부공파(主簿公派)·장사랑공파(將士郞公派)로 나뉜다. 이 중 송계사의 후대에서 다시 38파로 갈리며, 또한 별보로 영천공파(榮川公派)가 있다.

송계사의 후예로는 송시열(宋時烈)[문묘·종묘에 배향], 송준길(宋浚吉)[문묘에 배향], 송근수(宋近洙)[종묘에 배향] 외에 서원에 향사된 20명 등이 있다. 특히 송준길·송시열·송규렴(宋奎濂)은 3송으로 불린다. 송준길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성리학자로서 대사헌·병조 판서·우참찬·이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명필로 이름이 났다. 송규렴은 대사간·대사헌·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송시열인조 때 36세로 사마시에 장원 급제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효종 때 이조 판서, 현종 때 우의정·좌의정을 역임하였는데, 숙종 때 서인이 노론·소론으로 갈리면서 노론의 영수가 되었고, 왕세자 책봉 문제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서울로 오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다.

송계중의 후예로 동지중추부사 송인수(宋仁壽), 사과(司果) 송예수(宋禮壽), 임진왜란 원종공신 2등 훈인 송응현(宋應賢)과 송걸(宋傑)이 있다. 송계중의 후예들은 주로 무인으로 성장하였으며, 후손이 그다지 많지 않다. 금정구 남산동은진 송씨는 장사랑공파에 속하는 송인수의 후손으로 조직된 유익공 종중(有益公宗中)이다.

[명칭 유래]
1720년경 동래 무청 교련관인 은진 송씨 송초건(宋楚健)의 셋째 아들인 유익공(有益公) 송준업(宋俊業)이 지금의 금정구 남산동 신암 마을로 와서 서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이때 문무 겸전(文武兼全)의 동량(棟樑)이 배출되라는 뜻으로 서당 이름을 서검 서당(書劍書堂)이라 하였다. 그 후 이곳은 서검(書劍)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898년(광무 2) 2월 신암동(新岩洞)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는데, 마을에 돌이 많아 그렇게 부른 것으로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송인수의 아들 송응지(宋應祉)가 임진왜란 전 회덕에서 동래 장산 아래에 복거(卜居)한 후, 동래 삼성대(三姓臺)에서 처음으로 서당을 개설하여 후학을 교훈하면서 살았다. 16세기 말 송응지의 아들 송종조(宋宗祚)·송수경(宋守卿) 대에 동래 동면[현 해운대구] 재송동 뒷골 마을로 들어왔다. 후손들은 주로 동래 무청에 출입하여 훈련원 판관, 중군, 교련관, 대솔군관 등을 배출하였다.

송응지의 5세손 훈련원 판관 송초건(宋楚健)은 아들 넷을 두었는데 송준방(宋俊芳)·송준호(宋俊豪)·송준업(宋俊業)·송준평(宋俊枰)이다. 송준방은 재송동, 송준호는 울산 금단리, 송준업은 동래 북면 남산동, 송준업의 4세손 송두규(宋斗奎)는 19세기 중반 경상북도 문경군 문경면 평천리로 이거하였으며, 송준업의 6세손 송수홍(宋守弘)은 20세기 초반 전라북도 군산으로 이거하였다.

18세기 초반에 입향한 송준업은 동래 무청의 영하를 역임하였으며, 아들 송재장(宋再章)은 동래 무청 교련관, 손자 송주흥(宋周興)은 동래 무청 대솔군관을 지냈다. 후대에 와서 동래 향교와 동래 안락서원에 출입하여 유림 모성계안(儒林慕聖契案)에 들어 동래 유림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송준업의 종손계 및 차종손계는 대부분 금정구 남산동 지역에 살고 있다.

[자연 환경]
남산동 신암 마을 서쪽으로 금정산(金井山) 중에서도 산세가 제일 수려한 용호덤 칭디미[무명봉]가 있고, 북쪽으로는 천지등(天地嶝)과 천지 샘을 발원지로 하는 천지등 계곡이 있다. 서쪽으로 용호등(龍虎嶝)과 용호샘을 발원지로 하는 용호등 계곡이 있다. 마을은 전반적으로 서고동저의 형태이다.

[현황]
남산동 신암 마을에는 은진 송씨가 13대째 살며, 1974년 건립한 은진 송씨 재실인 서검재(書劍齋)에서 입향조 이하 20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양력 11월 세 번째 주 일요일에 제향을 올린다. 또한 장학 사업 등을 통하여 후손 양성에 힘을 쏟는 등 종원들의 회합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2013년 현재 은진 송씨 20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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